정부, 민법상 '징계권' 범위서 체벌 제외키로
54개국 체벌금지…일본도 징계권 개정 검토
법무부 "원천금지 맞지만…일부 예외로 인정"
전문가 "돌봄인프라·교육 등 실효성 마련해야"
우리나라 대부분 부모들은 자녀 훈육을 위해선 체벌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처럼 체벌에 대해 관대한 가정 내 인식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선 법 개정 뿐 아니라 부모 교육 등 보다 전향적인 돌봄 문화 개선 방안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법무부, 여성가족부 등 4개 정부부처가 23일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서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아동 체벌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켜 나가고 민법상 규정된 친권자의 징계권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등 한계를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물론 현재 법체계 안에서 아동의 신체에 물리적으로 해를 가하면 폭행·상해죄로 다뤄지며 간접체벌도 강요나 학대행위가 될 수 있지만 가해자가 친부모라면 민법상 징계권을 들어 형이 감경될 여지가 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서 가해지는 체벌에는 엄격한 법 집행이 요구되지만 가정 내 체벌에 대해선 용인하는 분위기가 강한 것도 사실이다. 2017년 아동학대 가해자 10명 중 7.7명이 부모였으며 재학대 사례 가운데선 95%가 부모에 의해 발생했다.
아동복지법에서 '보호자가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 정신적 고통을 가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는 등 아동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는 법 조항이 존재하는데도 국제사회가 한국을 '체벌금지국가'로 분류하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징계권 용어 자체가 자녀를 부모의 권리행사 대상으로만 오인할 수 있는 권위적 표현이라는 판단에서다.
현재 스웨덴 등 전 세계 54개국이 아이들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친부모가 자녀에 대해 징계할 권리를 행사토록 한 나라는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
일본마저도 지난 3월 친권자의 자녀 체벌금지를 명기한 아동학대방지법과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데 이어 징계권 개정 검토 계획까지 내놨다.
정부가 1960년 제정 이후 줄곧 유지해 온 민법을 59년만에 개정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동복지법과 불편한 동거를 이어오고 있는 '징계권'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사회에선 '부모가 자녀를 키우려면 어느 정도 체벌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복지부가 지난해 12월 진행한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전국 20~60세 국민 1000명 가운데 76.8%가 '체벌이 필요하다'(68.3% '상황에 따라 필요', 6.5% '필요', 2.0% '매우 필요')고 답했다.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은 "원칙적으로 (체벌이) 금지되지만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위법성 조각사유라고 할 수 있는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체벌의 범위가 어디까지냐'가 문제"이라며 "'징계권에 당연히 체벌이 들어간다'는 인식만큼은 제한하기 위해 징계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고 예외적으로 필요한 경우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허용하는 법 구조를 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부모들이 체벌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은 "주된 아동학대 가해자로 친부모가 지목되는 등 가정에서 계속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그간 효과적인 아동양육 방안을 찾지 못했거나 양육의 어려움을 잘못된 방법으로 하고 있던 분들에 대해 돌봄인프라 확충, 부모상담교육 같은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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