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주도 20여개주에서 낙태제한 조치 통과 또는 논의 중
목표는 낙태금지 '로 대 웨이드' 판결 뒤엎기
반면 여성계에서는 낙태권을 회복할 때까지 이른바 '성파업(sex strike)'을 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등 반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진보 성향인 민주당도 낙태금지법에 부정적이다. 앨라배마주에서는 민주당의 저지로 낙태금지법 표결이 유보되기도 했다.
12일(현지시간) NBC와 AP통신,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주하원에서 낙태를 중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을 의결한 앨라배마주를 필두로 공화당이 주도하는 20여개주에서 낙태를 제한하는 조치가 통과되거나 논의되고 있다.
NBC는 보수 성향인 대법관들이 연방대법원에서 다수가 된 뒤 많은 정치인과 낙태 반대 단체들이 1973년 연방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전했다. 1973년 이전까지 미국에서 낙태는 불법이었지만 1973년 연방대법원은 이른바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에서 낙태권이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돼 보장받을 수 있다며 합법화했다. 이 판결로 미국에서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법률은 폐지됐다.
하지만 공화당과 낙태 반대 단체들은 사실상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법을 만들고, 연방대법원에서 이 법의 효력을 따지는 과정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엄격한 낙태금지법을 발의한 공화당 소속 테리 콜린스 앨라배마주 하원의원은 지난달 AP와 인터뷰에서 "연방대법원까지 가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엎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오하이오주에서 낙태 금지법 입법을 지원한 '라이트 투 라이프' 이사 제이미슨 고든은 "과거에는 대법원 구성이 로 대 웨이드를 뒤집는데 유리하지 않았다"면서 "(보수 성향) 인사가 대법관이 되고, 우리가 성취하길 희망했던 많은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 심장 박동법(낙태금지법)을 그 다음 단계로 놨다"고 했다. 마크 드웨인 오하이오주지사는 지난달 배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 임신 5~6주부터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같은 맥락의 낙태금지법을 의결한 조지아주의 상원의원 젠 조던은 NBC에 "각주들이 대법원 앞에 서기를 원하기 때문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 것"이라고 했다.
낙태권을 지지하는 비영리기관 구트마허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3월 미국 전역에서 300개 이상의 낙태 제한 법안이 발의됐다. 조지아와 미시시피, 오하이오, 켄터키주는 올해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단 연방법원이 법안 발효를 정지시키면서 현재 발효된 법안은 없다.
여성계는 공화당이 주도하는 낙태금지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배우 알리사 밀라노는 조지아주가 엄격한 낙태금지법을 제정한 직후인 지난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낙태금지법에 항의하는 성 파업(sex strike)에 모든 여성들이 참여해 줄 것을 제안했다. 기간은 여성의 신체 자율권을 되찾을 때까지다. 밀라노는 트윗 다음날인 11일 기자들에게 "그 기준(심장박동 기준)은 사상 최고로 엄격한 잣대"라면서 "말도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대법원이 결정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산모의 생명이 심각하게 위험할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낙태를 금지하고, 낙태 시술을 하거나 한 자에게 최대 99년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앨라배마주 낙태금지법은 지난 9일 주상원을 넘지 못했다.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강간과 근친상간을 낙태금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항을 추가한 것에 반발해 공화당 일부 의원들이 구두 투표로 이 조항을 삭제하려고 하자 민주당이 이를 거부하고 의사진행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양당이 충돌하면서 주상원은 오는 14일로 표결을 연기했다.
한편, 낙태 반대 단체 사이에서도 공화당의 목표인 로 웨이드 판결 재심이 관철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온다. 연방대법원이 변론을 듣지 않고 기각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낙태 반대 단체 소속 클라크 포사이스 변호사는 NBC에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부당하고 위헌적인 결정"이라면서도 "연방대법원은 지난 2월 루이지내아주 낙태금지법 발효를 막기 위한 조치를 5대4로 통과시켰다"고 했다. 포사이스는 "법원은 법률적인 문제가 있을 때 의견을 들어볼 지 여부에 대해 절대적인 재량권을 갖고 있다"며 "국가가 법원이 어떤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듣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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