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식량지원 논의 이번주 가시화할까…北 호응 관건

기사등록 2019/05/12 16:46:50

WFP 사무총장 13일 외교·통일장관 면담

식량지원 필요성 '공감' 규모·방식 협의

北 무력시위에 '국면 여론' 중요성 커져

정부 "지원 방침 여전…의견 수렴 먼저"

北, 협상 주도권 잡으려 호응 않을 수도

【평양=AP/뉴시스】황해남도에서 주민들이 옥수수 밭에서 작업하는 모습. 2015.06.25
【서울=뉴시스】김지훈 기자 = 북한의 연이은 무력시위에도 식량부족 사태에 직면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논의는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과 미국이 협상 국면을 유지하기 위한 메시지 수위를 조절하는 가운데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이 외교·통일부 장관을 만날 예정이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비즐리 사무총장은 오는 1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차례로 만난다.

WFP는 올해 초 북한이 유엔 주재 대표부를 통해 식량난을 호소하자 식량농업기구(FAO)와 함께 지난달 북한 현지에서 작황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200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북한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1000만여명이 식량 부족 상태에 직면할 정도로 긴급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정부 한 당국자는 이날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비즐리 사무총장은 북한 현지 작황 상황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유하고,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 방식과 규모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정부는 우선 WFP 측의 요청을 경청하고, 향후 구체적인 계획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북한의 무력시위에 따른 한반도 긴장 고조와는 별개로 북한의 식량 사정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확인된 만큼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지원 차원에서 식량지원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평양=AP/뉴시스】지난 13일 평양의 한 식품 공장 전시실에서 이곳 관계자가 견본품들을 안내하고 있다. 북한 공장들은 도시의 상점에 품질 좋고 먹음직스러운 먹거리를 공급하고 있으나 북한 정부와 국제 원조 단체들은 북한이 심각한 식량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2019.03.22.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두 차례 무력시위에 "신뢰 위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평가하며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협상 틀을 깨지 않고, 계속 유지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한국 정부의 대북 인도지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유지될 거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의 연이은 무력시위로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면서 당장 가시적인 계획을 내긴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KBS 대담에서 식량지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여야 지도부 회동을 공식 제안했다. 대북 식량지원을 위한 기술적 문제는 해결했으나,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제안으로 풀이된다.

이 당국자는 "(식량지원은) 미국도 여전히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결정하면 되는 일이지만 현 상황에서는 국민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는 게 먼저"라며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 방침은 변함없지만, 일단 정치권과 국민 의견 수렴 절차부터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WFP 등 국제기구가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여론 수렴 절차가 끝났을 때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내부적인 검토 절차도 국제기구와 함께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건은 북한이 호응하느냐다. 현재 북한은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 움직임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남북 정상 간 합의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인도지원을 빌미로 자신들을 유인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서울=뉴시스】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조선인민군 전연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10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2019.05.10. (사진=조선중앙TV 캡처) photo@newsis.com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는 이날 '북남선언리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제목 논평에서 "주변 환경에 얽매여 선언 이행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뒷전에 밀어놓고 그 무슨 '계획'이니 '인도주의'니 하며 공허한 말치레와 생색내기나 하는 것은 북남관계의 새 역사를 써나가려는 겨레의 지향과 염원에 대한 우롱"이라며 "겨레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몇 건의 인도주의협력 사업을 놓고 마치 북남관계의 큰 진전이나 이룩될 것처럼 호들갑을 피우는 것은 민심에 대한 기만이며, 동족에 대한 예의와 도리도 없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도 '제 할 바를 해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남측은)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지 말고 북남선언 이행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은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하고 있으나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미국이 유인책을 쓸 것이 아니라 '셈법'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식량지원이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는 데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하고, 지원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jikime@newsis.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