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년만에 첫 해외 수출 전시...8일 개막
포트투니 미술관서 회고전 문전성시..."충격_감동"호평 잇따라
윤범모 관장 "한국미술 국제무대서 자신감...이 전시가 전초 될 것"
미술관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팝업' 전등 두개 전시 처음
【베니스=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첫 눈으로 보면 추상표현주의와 비슷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한국 전통에서 나온 뭔가 다른 것 같은데, 그것이 뭔지에 대해서 우리가 배워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물론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이번 전시는 새로운 미술을 배우게 하는 좋은 기회다." (암스테르담 시립현대미술관 전 부관장 마틴 베르퇴스)
8일(현지시간) 베니스 시립미술관 포르투니 미술관(Fortuny Museum)에서 개막한 윤형근(1928~2007)대규모 회고전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유럽 관람객들의 끊임없는 발길과 진지한 관람이 이어졌다. 미술관 초대 인원만 750여명. 이날 오후 6시 이 숫자를 채우고도 관람객들이 들어서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움에 눈을 뜨며 "충격적이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포르투니 미술관 큐레이터 다리오 달라 라나는 "한마디로 정말 쇼크"라며 특히 "관람객들은 붉은 벽돌에 걸린 암갈색의 작품의 깊이감에 감탄하고 있다"고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유럽 관람객들은 명상적인 분위기를 전하는 면에서 "마크 로스코 같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로 ‘색면 추상’이라 불리는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다. 하지만 "화면에 번진 어두운 색감이 묘하게 감정을 건드리는데 한국의 서예가 바탕이 된 것 같다"는 관람객도 있어 한국 현대미술이 유럽에서도 널리 알려진 듯 했다.
실제로 윤형근의 베니스 전시는 국내에서 보던 작품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화이트 큐브 벽이 아닌, 벽돌벽과 나무바닥과 어우러져 명상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촛불을 켜놓은 것 같은 조명빛도 한몫한다. 윤형근 특유의 청색과 암갈색 물감을 섞은 땅의 빛깔 엄버(umber)색이 고풍스런 전시장에 그야말로 한 몸처럼 밀착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장 벽돌벽과 벽돌벽 사이, 흑백 사진으로 되살아난 윤형근의 생전 작업 사진도 감동을 전한다. 맨발로 붓을 들고 서서 한쪽을 바라보는 그는 작품처럼 묵직하고 느긋한 모습으로 관람객들을 마주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첫 해외수출 전시다. 지난해 8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개막식에 당시 마리 관장과 친분이 있던 다니엘라 페레티 포르투니 미술관장이 참석, 윤형근 작품에 감동해 베니스 전시가 성사됐다. 포르투니 미술관은 이번 전시에 운송, 홍보등을 대대적으로 투자, 국립현대미술관은 작품만 들고 와 한국미술의 위상을 알리고 있다.
포르투니 미술관은 베니스의 대표 시립미술관으로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미술관 중 하나다. 저명한 디자이너였던 마리아노 포르투니(1871~1949)의 스튜디오였다. 포르투니 사후 1949년 베니스 시에 기증되어 1965년 이후 시립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개인전이 열린 것은 세계적인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이후 윤형근이 두 번째다.
최근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 《직관(Intuition)》(2017), 《비례(Porportio)》(2015) 등의 전시를 통해, 비엔날레와 함께 꼭 방문해야 할 미술관으로 꼽혀 왔다. 베니스의 유력 미술관에서 2019년 비엔날레 기간의 전시로 '윤형근'전이 선택된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윤형근' 첫 해외 순회전은 2018년 8월 MMCA서울에서 개최된 회고전의 내용과 작품을 기반으로, 더 커진 공간 규모에 맞게 국내외 윤형근의 작품을 일부 추가해 전시했다. 포르투니 미술관의 고풍스러운 건축물 4개 층 중에서 3개층에 유화 60여 점과 드로잉, 아카이브등 100여 점을 선보인다.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전시장 각 방마다 작품 크기 등을 신중히 고려해 전시를 연출했다"면서 "윤형근의 작품들은 오랜 시간의 축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축물의 역사 위에, 무심(無心)한 듯 자연스럽게 걸려 서울에서의 전시와는 또 다른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보였다.
베니스에서 다시 부활한 윤형근은 이미 24년전 한국 대표 작가로 베니스에서 이름을 알렸다. 지난 1995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으로 개관한 한국관 첫 전시(윤형근 곽훈 김인겸 전수천)에 참여했다. 그때도 추상작품이지만 동양의 정신성과 현대미술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주목 받았고, 2001년 제49회 베니스비엔날레 감독이자 유명 전시기획자 하랄드 제만은 "숨이 쉬어지는 작품"이라고 평한바 있다.
이날 개막식에서 만난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은 "유러피안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줄 몰랐다. 광적인 마니아들이 많더라"면서 "이번 전시는 조용한 용광로 같은 울림이 강하다"고 평했다.
특히 "고전적인 건축공간과 어울려 깊이감이 느껴지니까 윤형근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 같다"며 "한국미술도 국제무대에서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번 전시가 그 전초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윤 관장은 "생전 윤형근 화백과 미술품 감정을 같이했었는데, 감식안도 탁월했다"면서 "별명이 영국 신사일 정도로 과묵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작품과 똑같다"고 회상했다.
전시 개막식에는 세계 유명 미술관 화상, 세계적인 매체들이 참석 눈길을 끌었다. 미국 뉴욕 모마미술관 인터내셔널 프로그램 디렉터 제이 엘 레빈슨, 모마 미술관 정도련 큐레이터, 세계적인 화상 데이비드 즈워너, 미국 페이스 갤러리 디렉터 수잔 듄, 벨기에 안트워프 현대미술관장을 비롯해 뉴욕타임즈, 르 피가로, 아트인 아메리카, 보그, 오큘라, 가디언등 기자들이 방문, 베니스가 불러낸 윤형근과 한국미술에 대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고 호평했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은 '윤형근'과 함께 베니스에서 한국미술 팝업전 '기울어진 풍경들-우리는 무엇을 보는가'도 선보인다.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관이 위치한 아르세날레 부근의 해군장교클럽 베니스 미팅 포인트에서 7~11일까지 개최한다.
베니스 비엔날레(5.11~11.24)기간 국립현대미술관의 두 개 전시가 동시 선보이는 것은 개관 50년만에 이번이 처음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성취와 역동성을 국제적으로 확산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형근 전시는 11월24일까지 이어진다.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