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조선 시대 대규모 축성방식 확인, 정읍 고사부리성

기사등록 2019/05/01 13:49:04
정읍 고사부리성(남-북)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대규모 축성 방식이 정읍 고사부리성 유적에서 확인됐다.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사적 제494호 '정읍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은 백제 때 지방 통치 중심인 '오방성'(五方城) 중 '중방성'(中方城)으로 사용됐다. 이후 1765년까지 읍성으로 중심 구실을 했다. 

정읍시와 전라문화유산연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이 유적의 남문지 동쪽구간 성벽과 수구시설 확인 조사를 진행 중이다.
정읍 고사부리성, 백제 시대 축성 성벽 노출(서-동)
현재까지 확인한 사항은 백제 때 처음 축조 후 통일신라, 고려, 조선까지 3차례에 걸쳐 수리한 양상, 성벽 축조방법,  배수 관련 시설인 수구 등이다.

정읍 고사부리성은 백제 시대에 외벽과 내벽을 쌓아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어 채우는 협축 기법으로 쌓은 석축산성이다. 조사구역 내 성벽 규모는 길이 45m, 잔존 높이 3.5m, 최대 폭 5.4m다. 성벽은 3~4구간으로 나눠서 외벽과 내벽 사이는 다듬은 돌로 채워 완성했다.   
백제 시대 축성한 정읍 고사부리성, 협축부 채움시설
성벽은 퇴물림기법, '品(품)'자의 바른층 쌓기, 그렝이기법 등을 이용해 축조했다. 퇴물림기법은 성을 쌓는 돌들을 약 3~5㎝정도씩 안쪽으로 쌓아올리는 방식이다. 바른층 쌓기는 같은 간격으로 돌을 면 높이가 일정하도록 쌓는 방식이다. 그렝이기법은 서로 다른 모양의 건축부재를 맞대어 면을 맞추는 방법인데 고사부리성의 성을 쌓는 돌들은 굴곡이 지게 다듬어 결합됐다.
통일신라 시대 수구시설, 협축부 채움시설 일부를 파내고 설치
이후 통일신라 시대에 수리해 다시 쌓았는데 전반적으로는 백제 시대에 쌓은 석성축조 전통을 유지했다. 성내 물을 배출하는 수구시설 2기가 추가됐다. 이 시설은 성곽 일부를 파내서 조성했다.

고사부리성 축성법 가운데 고구려 축성기법인 육합쌓기와 유사한 부분도 일부 확인됐다. 육합쌓기는 석재 6매를 상하좌우로 결합해 쌓는 방식이다.
정읍 고사부리성에서 나온 백제 시대 유물
다리가 3개 달린 토기, 항아리, 접시, 병 등 다량의 백제 토기와 기와, 고구려계 토기로 알려진 암문토기가 출토됐다. 이 성과는 앞으로 고사부리성 복원·정비 사업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된다.

이번 조사에서 성벽 외측의 보완시설과 기둥구멍이 새로 나타났다.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이뤄진 개축 과정에서 이미 있던 성벽을 토성으로 바꿔 나간 사실도 확인됐다. 

정읍 고사부리성 백제 성벽은 성돌을 정교하게 다듬고, 견고함과 안정성을 극대화하는 축성방법을 총동원해 축조했을 뿐 아니라 백제에서 조선 시대까지 이어지며 장기간 이용한 성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고사부리성이 백제 때 지방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 있는 핵심 치소(治所)성으로 조성된 이래 지리·전략적 중심지로서 중요하게 다뤄졌음을 말해준다.

정읍시와 전라문화유산연구원은 고사부리성 유적 현장설명회를 2일 오후 2시 발굴현장에서 개최한다.


suejeeq@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