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일상이잖아···김대성 비평집 '대피소의 문학'

기사등록 2019/04/19 06:12:00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도시엔 수많은 종류의 은둔자와 도망자로 넘쳐나지만 정작 숨은 건 도시 그 자신이다. 도시를 가로지르며 다른 공간을 상상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겠지만 '도주'와 '추격'이 아닌 방식으로 이곳을 걸어내는 일은 해볼 만한 일이다. 아무리 도시가 제 살을 갉아먹으며 파괴와 증식의 이중주로 미쳐 날뛴다 해도 도시의 욕망 바깥으로 외출해보는 '산책'이라는 삶의 양식은 고장 난 세상을 고장 난 상태로 걷는 것을 지속하는 일상적 실천의 하나다."

문학평론가 김대성(39)씨가 비평집 '대피소의 문학'을 냈다.

'재난의 일상화'라는 상황인식 속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지만 누구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무력감 속에서 읽고 쓰는 문법도 파괴되어 간다. 이제 문학은 현실을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구해내는 것을 통해 재발명되어야 한다."

김씨는 제도화된 문학장을 비롯, 생활 곳곳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사력을 다해 지켜내고 있는 사람의 말, 그 목소리에 잠재되어 있는 힘이야말로 새로운 문학의 역능"이라고 한다. "만약 한국문학의 해체를 이야기해야 한다면 나는 우선 사적·공적 관계망을 독점함으로써 개별자들을 엿장수 마음대로, 입맛 따라 선별하며 거덜 내고 있는 문단의 다단계적 구조의 해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연한 배제 장치인 '주니어 시스템'이 아닌 자생과 연대의 생태를 구축할 방안에 대한 논의가 적어도 종말과 죽음 선고보다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속박과 핍박받는 이들의 회복을 돕는 장소, 결별과 추방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이 흘러드는 곳,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지는 않지만 지금 머물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곳. 지금까지 옭아매왔던 사회적 구속이나 제한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될 수 있는 곳에 대한 염원이 만들어낸 장소가 '대피소'다."

김씨는 "언제라도, 무엇이라도, 누구라도 무너지고 쓰러질 수 있는 이 세계에서 절실한 것은 미래나 희망이 아니라 오늘을 지켜줄 수 있는 대피소"라고 짚었다.

"대피소에선 사소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것이 사람을 살리고 구한다. 한 잔의 물, 한마디의 말, 몸을 덮어줄 한 장의 담요, 각자가 품고 있는 이야기 한 토막, 소중했던 기억 한 자락. 대피소에 당도한 이들은 그제야 마음 놓고 몸을 벌벌 떨 수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마음 놓고 몸을 벌벌 떨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대피소의 희미한 불빛은 회복하는 존재들의 몸이 어울리며 만들어내는 발열에 가깝다. 누군가의 작은 '두드림'만으로도 금세 깨어나는 힘들이 서로를 붙들 때 그 맞잡음이 온기가 되어 대피소를 데운다. 세상의 모든 대피소는 오늘의 폐허를 뚫고 나아갈 수 있는 회복하는 세계를 비추는 등대이기 때문이다." 336쪽, 1만8000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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