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최태웅 감독 모니터링 배구 “에이전트라는 오해도”

기사등록 2019/04/08 06:02:00
최태웅 감독, 현대 캐피탈
【천안=뉴시스】권혁진 기자 = 선수 은퇴 직후 코치 수업없이 프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사령탑에 오른 뒤에는 4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 두 차례 정상을 밟았다. 이 만화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프로배구 V-리그 현대캐피탈의 최태웅(43) 감독이다.

현대캐피탈은 지난달 26일 대한항공과의 도드람 2018~2019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 3차전에서 세트스코어 3-1(25-20 30-32 25-19 25-20)로 승리를 거뒀다. 우리카드와의 플레이오프를 2전 전승으로 통과한 현대캐피탈은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챔프전마저 3연승으로 정리,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최 감독은 2년 만이자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지휘하며 명장 반열에 올랐다.

시즌 개막 전부터 현대캐피탈은 우승후보 0순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자유계약선수(FA) 최대어 전광인을 데려왔고,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검증된 파다르를 뽑는 행운을 누렸다. 문성민-전광인-파다르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는 ‘어벤저스’로 불렸다.

현대캐피탈의 베이스캠프인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에서 만난 최 감독은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보다 선수들의 부담이 컸던 것 같다. 광인이도 잘하는 형들이 있으니 자기가 조금만 더 해주면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더라. 광인이에게 ‘리그가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다’고 말해줬었다”고 떠올렸다.

최 감독의 말처럼 어벤저스는 만능키가 아니었다. 대한항공에 눌려 좀처럼 올라가지 못하던 현대캐피탈은 2위로 시즌을 마쳤다. 주전 세터 이승원의 들쭉날쭉한 경기력이 문제였다.

“최대 고민이 세터와 공격수들의 호흡이었다”는 최 감독은 마지막 라운드에서 희망을 찾았다. “몇 경기를 졌지만 승원이를 보면서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더라. 뭔가 맞는 느낌이었다. 그때 ‘차라리 2등이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조금만 믿음이 쌓이면 (포스트시즌에서) 뭔가 될 것 같았다.”

정규리그 막판 감을 잡은 이승원은 단기전에서 기량을 200% 발휘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만 흔들렸을뿐 나머지 경기에서는 완벽에 가까웠다.

“승원이가 내 생각과 다르게 토스를 몇 개 보냈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그러고나니 조금씩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더라. 예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그런데 챔프전에서도 고집을 부렸다”는 최 감독은 “한 단계 올라서면서 자신감이 붙으면서 세터의 개성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그게 좋더라. 개성이 없던 선수가 생기니깐 더 좋았다. 시키는 것도 못하던 선수가 오히려 한 단계 더 생각해 창의적인 플레이를 했다. 덕분에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현대캐피탈 감독실 책상에는 6대의 모니터가 놓여있다. 3년 전 최 감독이 사비 1000만원을 들여 구입했다. 예상대로 화면은 늘 배구와 관련된 콘텐츠들도 채워진다. 최 감독이 숙소에 머무는 시간에는 모니터 6대가 쉴 새 없이 가동된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배구 영상은 15테라바이트(TB)가 넘는다. 요즘에는 실시간 스트리밍이 가능해져 외장 하드 구입을 멈췄기에 이 정도다.
영상을 보다가 날이 밝은지도 모를 정도로 배구 ‘덕후’인 최 감독에게도 슬럼프가 있었다. “올 시즌 처음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배구 영상 분석을 정말 좋아한다. 재미있어서 했는데 어느 순간 일 때문에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겹다. 또 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럼프 탈출도 덕후스러웠다. “영상을 보기 너무 힘들어서 시선을 외국 경기로 돌렸다. 그때 외국 경기를 집중적으로 봤다. 뭐가 됐든 계속 봤다. 그러면서 다시 재미가 붙었다.”

영상찾기는 선수 시절 생긴 버릇이다. 새벽에 보고 싶은 해외리그 경기를 놓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컴퓨터를 뒤졌다고 한다. 떨어지는 화질은 문제되지 않았다. 최 감독은 찾아낸 영상을 소중히 다루며 보고 또 봤다. “처음에는 세터를 위주로 봤다. 이후 다른 선수들도 지켜봤는데 영상 속 선수들이 나중에 V-리그로 오더라.”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다. 자신의 엄청난 관심이 불러온 오해다. “한국에서 뛴 외국인 선수가 ‘최태웅이라는 선수가 해외리그 영상을 엄청 본다. 에이전트 업무를 같이 하는 것 같으니 선수를 보내려면 그쪽에 연락해봐라’고 말을 한 모양이다. 그로 인해 나한테 연락하는 에이전트가 많았다. '숙식을 제공할테니 자기네 나라로 와서 선수를 봐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뭔소리냐, 난 그냥 선수일뿐’이라고 거절했다”며 껄껄 웃었다.

최 감독은 김호철 현 대표팀 감독으로부터 현대캐피탈의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여전히 돈독하다. 해법을 찾기 어려울 때 최 감독은 김 감독에게 전화를 해 의견을 구하곤 한다.

2018~2019시즌 중반이었다. 세터 문제로 고민하던 최 감독이 김 감독에게 조언을 청했다. 경기장을 찾아 플레이를 세밀히 지켜본 김 감독은 최 감독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최 감독, 지금 이승원이 문제가 아닌데?”

최 감독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김 감독님께 그 이야기를 듣고 평소와는 다른 시각으로 팀을 지켜봤다. 그 상태로 가만히 보니 우리팀이 기본적으로 잘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흐트러져 있더라. 그래서 다시 기본기부터 잡았다.”

김 감독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며 고마워한 최 감독은 자신도 미래에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내가 현장을 떠나고 나이가 들면 지금 제자들은 지도자가 될 것이다. 분명 막힐 때가 있을텐데 그럴 때 나에게 전화를 해줬으면 좋겠다. 그들의 멘토가 되는 것이 나의 큰 목표다.”


hjkwo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