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복지부 승인 후 2017년 병원 준공
‘’개설 불허” 공론조사위 권고에도 조건부 허가
시민단체 “의료공공성 훼손 영리병원 철회해야”
내일부터 개설허가 취소 전 청문절차 돌입
【제주=뉴시스】조수진 배상철 기자 =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개원 시한인 4일 제주도가 허가취소 절차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안동우 정무부지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녹지국제병원은 지난해 12월5일 조건부 개설 허가를 받은 뒤 의료법에 따른 개원 기한인 3개월이 지난 오늘까지 정당한 사유없이 업무시작 준비를 하지 않아 개원 기한이 만료됐다”고 발표했다.
그는 “녹지국제병원 측의 개원 기간 연장 요청을 승인하지 않는 이유와 지난달 27일 있었던 개원 준비상황 현장 점검 기피행위가 의료법 위반임을 알리는 공문도 각각 발송했다”며 “모기업 녹지그룹은 사업 파트너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향후 사업 방안을 논의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2015년 복지부 승인 후 2017년 병원 준공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과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르면 제주도 내 외국인 또는 외국인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한 법인 등이 영리병원을 설립하려면 보건복지부장관의 승인과 도지사의 개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국 부동산개발회사 녹지그룹의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지난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 당시 보건복지부로부터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 승인을 받았다.
이후 사업자는 총 778억원을 투자해 지난 2017년 7월 서귀포 헬스케어타운 내 2만8163㎡ 부지에 지상 3층·지하 1층, 47개 병상 규모로 병원을 준공하고 다음 달인 8월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를 신청했다.
이에 도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꾸려 지난 2017년 11월1일부터 12월26일까지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여부 심사를 거쳤다. 당시 심의위는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조건으로 허가를 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영리병원 반발 여론에 공론화 조사…“개설 불허 권고”
국내 첫 영리병원의 개설 허가 심사가 시작되자 제주지역을 비롯해 전국 의료·시민사회단체가 건강보험 체계의 근간을 흔들고 의료 공공성의 훼손을 초래할 것이라 주장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녹지국제병원의 개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차 거세지자 도는 지난해 3월 공론화 절차를 거치기로 결정하고 다음 달인 4월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위원장 허용진)를 구성했다.
같은 해 10월4일 공론조사위는 “최종 조사결과 개설을 허가하면 안 된다고 선택한 비율이 58.9%(106명)으로 개설을 허가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 38.9%(70명)을 20%포인트 앞섰다”고 발표하며 ‘녹지국제병원 개설 불허’를 권고했다.
반대 결정의 요인으로는 다른 영리병원들의 개원으로 이어져 의료의 공공성이 약화할 것 같다는 의견이 66.0%로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 조건부 개설 허가…시민단체 “숙의 민주주의 파괴·사업 절차 의혹투성이”
이에 줄곧 “공론조사 결과를 최대한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던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돌연 지난해 12월5일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한 ‘조건부 개설 허가’ 결정을 발표했다.
기자회견 당시 원 지사는 “국가적 과제인 경제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한편 감소세로 돌아선 관광산업의 재도약, 건전한 외국인투자자본 보호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공공의료체계 근간 유지 등을 고려했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원 지사는 이 밖에 ▲중국자본 투자 손실로 인한 한·중 외교문제 비화 ▲외국투자자에 대한 행정신뢰도 추락 ▲녹지 측의 민사소송 등 손해배상 ▲녹지병원 직원 134명의 고용 문제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 같은 결정에 영리병원을 반대하던 시민사회 단체는 즉각 규탄하고 나섰다.
같은 날 도내 30여개의 시민사회단체·정당으로 구성된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는 제주도청 앞에서 “오늘을 숙의 민주주의를 파괴한 원 지사의 퇴진을 촉구하는 첫날로 삼겠다”라며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상 위법하거나 부당한 사항을 철저하게 규명해 허가가 철회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토요일마다 제주시청 앞에서 ‘영리병원 허가 철회·원희룡 지사 퇴진’을 내세운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 1월31일 “정진엽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제주 영리병원의 사업계획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승인을 했다”며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사업시행자가 의료사업 경험이 전혀 없는 점과 국내법인의 우회투자 의혹, 병원 건물 가압류 상태에서 허가가 이뤄진 점 등을 들며 녹지국제병원의 허가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내국인 진료 금지’ 두고 제주도-사업자 간 법정 다툼
반면 사업자인 녹지제주헬스케어유한회사는 조건부 허가 결정을 두고 지난달 14일 제주지방법원에 “진료 대상자를 외국인 의료 관광객으로 한정하는 것은 위법하다”라며 처분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내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은 진료 요청을 하는 환자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녹지국제병원 측은 조건부 허가 결정 당시에도 제주도에 공문을 보내 “지난 2015년 보건복지부가 사업 승인 당시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는 못하지만 내국인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라며 “사업자의 입장을 묵살하고 이제 와서 외국인 전용으로 허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법률적 대응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제주도는 “사업자가 지난 2015년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외국인 의료관광객 대상 의료서비스 제공’으로 명시했다. 이에 따라 ‘내국인을 대상으로 진료하지 않더라도 의료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복지부의 유권 해석도 받아놓은 상태”라고 응수했다.
또 외국의료기관이 내국인 진료 제한 조항을 어길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제주도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개설 허가 조건에 대해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법정 다툼으로까지 이어지자 사업자는 개원 시한인 이날까지도 업무를 정상적으로 시작하지 못했다.
의료법 제64조(개설 허가 취소 등)에 따르면 의료기관이 개설 신고나 개설 허가를 받은 날부터 3개월(90일) 이내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않으면 개설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
◇5일부터 개설허가 취소 전 청문절차 돌입
이에 따라 도는 오는 5일부터 청문 주재자를 선정하고 처분사전통지서 교부하는 등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전 청문’ 진행을 위한 절차에 본격적으로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청문은 대학교 교수나 변호사, 공인회계사, 전직 공무원 가운데 청문 관련 업무를 담당한 사람을 대상으로 선정한 청문 주재관이 진행한다.
녹지국제병원 측이 청문에 참석하지 않아도 법에 따라 절차가 진행되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결과는 한 달 전후로 나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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