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로켓·핵실험 안 한다"…도발 가능성 낮아
외교 창구 다변화 방식으로 새로운 길 모색할 듯
'전략적 동반자' 중국 지원사격 받으며 美 압박
南 중재로 교착 극복, 남북협력사업 집중할 수도
【하노이(베트남)=뉴시스】김지훈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8개월 만에 재회한 자리에서 "(지난 261일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고민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했던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회담 때 '영변 핵시설 폐기'를 처음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협상은 결렬됐다.
이에 북한은 '새로운 길'을 다시 언급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협상 결렬 다음날인 지난 1일 오후 멜리아호텔에서 한국 취재진에게 "미측이 굉장히 사리가 맞지 않고, 그래서 이러한 회담에 계속 나가야 할지 생각을 다시 해야겠다고 고민하고 있다"며 "신년사로부터 시작해서 상응조치가 없으면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입장도 표시했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뭐가 돼도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 미국 측의 반응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최 부상은 다음날인 2일 다시 한국 취재진과 만났을 때 '새로운 길'이 무엇이 될 거냐는 질문에 입을 굳게 닫았다. 북 측은 어떤 새로운 길을 선택함으로써 현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지를 두고 내부적으로 고심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길'은 김 위원장이 지난 1월1일 신년사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미국이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 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어쩔 수 없이 자주권과 국가 최고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새로운 길'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교착 국면이 거듭되면서 '고민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왔지만 조금 더 노력해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두 번째 만난 때 상응조치를 반드시 끌어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인민들에 대한 다짐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새로운 길'이 도발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회담 때도 비핵화 의지를 재차 확인하며 "더 이상 로켓과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결렬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북한도 '톱다운' 방식 협상의 판이 깨졌을 때 후폭풍을 모를 리 없다.
북한은 이번 협상 때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제안했으나 미국은 이를 받지 않았다. 미국은 영변 이외의 모든 핵시설에 대한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려는 모습이다. 허들이 더 높아진 것이다. 때문에 '톱다운' 방식의 북미 비핵화 협상이 언제 재개될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은 외교 창구를 다변화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이 미국에 제안하고 있는 '비핵화-상응조치' 방안에 "응당한 요구"라는 입장이다. 다자 구도의 비핵화 협상이 시작될 경우 북한의 전략적 동반자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다. 다만 무역 분쟁 등 미국과의 이해관계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은 남북관계를 기반으로 한 대미 협상 동력에 상당한 기대를 걸 수도 있다. 북미는 지난해 교착 국면에 봉착할 때마다 한국에 중재자 역할을 요구하며 고비를 넘겨왔다. 북한의 2차 북미 정상회담 핵심 키워드가 '민생'이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제재 국면 속에서 할 수 있는 남북경협의 기초를 최대한 다지며 미국과의 줄다리기를 이어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jikim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