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오전 10시30분 국적증서 수여식
허위·최재형·박찬익 선생 등 후손들 39명
최재형 후손 "조부 뜻 실현돼 가슴 뿌듯"
2006년부터 13년간 국적취득자 1118명
법무부는 27일 오전 10시30분에 정부과천청사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한 독립유공자 19명의 후손 39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국적 증서 수여식을 개최했다.
후손 39명의 국적은 러시아 18명, 중국 13명, 우즈베키스탄 3명, 투르크메니스탄 2명, 카자흐스탄 2명, 쿠바 1명이다. 이들은 국적법 7조에 따라 특별귀화허가를 받게 된다.
이들은 허위, 최재형, 박찬익, 전일, 김남극, 최명수, 이여송, 이인섭, 이근수, 오성묵, 이경재, 권재학, 강상진, 남인상, 박택룡, 구철성, 한이군, 이승준, 김규석 선생의 후손이다.
건국훈장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은 허위 선생은 1895년 명성왕후 시해와 단발령 반포에 반발해 재야유생들을 모아 항일 의병 참모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전국 각지에서 의병을 조직했고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을 구성해 일본군과 전투하고 부일 인사를 처단했다.
또 1907년 11월 전국 각지 의병장들과 함께 13도 연합의병부대를 구성하고 1908년 1월 서울진공 작전을 펼치며 일본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그해 6월 일제에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고 9월 서대문형무소의 첫 번째 사형수로 순국했다.
'독립장'을 받은 최재형 선생은 1904년 러시아 연해주 노우키에프스크에서 '동의회'를 조직해 교포들의 단결과 무장독립투쟁을 전개했다. 1908년 의병을 이끌고 함경북도 일대의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1909년 안중근 선생 등과 단지동맹을 결성했다.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신규식·이동년 선생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직을 논의했고 의정원회의에서 초대 재무총장이 됐다. 이후 '독립단' 단장으로 무장독립투쟁을 벌이다가 1920년 4월 일본군에 체포돼 총살로 순국했다.
'애국장'을 받은 이여송 선생은 1930년대 조선혁명군에 가담해 제1사 부관으로 무기 구입을 담당했고, 1936년 2월 제1중대 부관으로 만주 집안현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에 전사했다.
최재형 선생의 후손인 최발렌틴 러시아 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은 "할아버지께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러시아 거주 동포들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과 '대한민국이 조국의 침입자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다. 두 가지가 모두 실현돼 가슴 뿌듯하다"며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국적을 취득하게 돼 영광스럽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날 행사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들의 숭고한 희생에 보답하고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은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독립유공자를 앞으로도 계속 발굴해 그 후손들이 대하민국 국적을 되찾아 국내에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지난 2006년부터 13회에 걸쳐 총 326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국적을 취득한 독립유공자 후손은 총 111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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