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사무소 교환 등 관계정상화 패키지 합의
최종적 비핵화는 향후 과제로 미룰 수 있어
'스몰 딜' 모아 '빅 딜'로 가는게 불가피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베트남 하노이에서 27~28일 열리는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결과가 '소규모 합의(small deal)'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늘고 있다. 북한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비핵화를 위한 확정적이고 실질적인 조치에 합의하지 못하고 중간단계적 합의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같은 전망들이 나오는 배경은, 기본적으로 ▲핵폐기의 개념과 ▲여러 단계를 거쳐 이뤄지는 핵폐기 과정에 걸맞는 보상수준에 대해 북한과 미국이 너무나 큰 입장 차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 차이보다는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입지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분석이 유력하게 대두된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이뤄진 합의는 '원칙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 그쳤다. 비판가들이 싱가포르 합의를 '속빈 강정'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근거다.
다만 1994년 제네바 핵합의 이래 여러차례의 협상이 타결과 파기를 반복해온 역사를 볼 때 '최초의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에서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건 과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우리 정부의 평가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걸핏하면 '북한이 1년 이상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있고 한국전쟁 미군 유해도 반환됐다. 제재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면서 1차회담의 성과를 내세울 수 있었던 배경이다.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내준 것이 없지만 긴장이 완화되는 성과가 있지 않았느냐는 반박이다. 미국 대통령이 실패국가인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을 만나준 것 자체가 큰 보상이라는 비판은 대응하지 않으면 그뿐이었다.
그러나 1차회담의 원칙적 합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후속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업적'은 빛을 잃고 있다. 올해 신년 방송 연설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새로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더이상 업적을 자랑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한 꼴이었다. 방송을 통한 경고가 충분치 않았던지 김정은 위원장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 면전에서 직접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경고가 거듭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서서히 입장을 누그러트리기 시작했다. '제재는 그대로다. 북한은 핵실험도 안하고 미사일도 쏘지 않는다'고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핵협상 책임자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트럼프 대신 총대를 맸다. 평양으로 날아가 협상을 해야 하는 그가 협상을 일주일 앞두고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의 개념을 살짝 비틀어 설명했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제재를 해제하지 않겠다"고 말해왔지만 "상대편이 모든 것을 다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건 아니다"라고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해석을 덧붙인 것이다. 비핵화가 완성될 때까지 제재는 해제하지 않을 것이지만 종전선언 등 다른 보상조치는 해줄 수 있다는 뉘앙스였다.
그러나 비건이 평양을 다녀온 뒤 북한이 제재 해제 이외의 어떤 보상조치에도 크게 관심이 없음이 다시 확인됐다. 북한이 2차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국내 매체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정황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 셈이다. 제재를 고수하면서 2차 정상회담을 포기하거나, 제재를 일부라도 풀어서 북한을 달래거나, 아니면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앞의 두가지 선택은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정치적 위험부담이 너무 큰 선택일 것이다.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되려면 2차정상회담을 화려하게 포장할 성과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북한 요구를 받아들여 제재를 풀면 거센 비판에 맞닥드리게 돼 정상회담 성과가 2020년 선거에서 활용되기 어려운 '빚좋은 개살구'가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소규모 합의'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는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제3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근거로 한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2차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입장을 완화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제재 완화는 절대 없다'고 고집부리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14일 CBS 방송과 인터뷰에서 "제재완화를 위한 대가로 좋은 (회담)성과를 얻는 것이 우리의 전적인 의도"란 말로 한발 물러서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백악관 로즈가든 기자회견에서 지나가는 말로 "우리는 단지 핵실험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 2차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가시화하는 합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말했다.
급기야 미 CNN 방송은 18일 "미국이 북한과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를 논의중"이라고 보도했다. 제재 완화없이 비핵화없다는 북한의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면,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만으로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들만을 토대로 예상한다면 2차정상회담은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와 불가침선언과 같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조치를 내세우면서 실질적인 북한 비핵화는 장기적, 선언적 과제로 제시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것이 '소규모 합의'의 내용이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소규모 합의'를 우려하는 전망들은 이보다 더 큰 규모의 합의였다. 미국이 북한의 최종적인 비핵화를 앞세우는 대신 미국을 사정거리로 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폐기로 목표를 낮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제재완화를 허용한다는 전제였다. 이같은 방안에 대해선 미국내에서도 상당한 지지가 있다.
그러나 미국을 겨냥한 ICBM을 포기하는 방안에 동의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또 핵탄두와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중단거리 미사일을 방치하는 이같은 합의가 한국과 일본의 안보에 악몽인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나아가 북한의 최종적인 비핵화를 사실상 포기하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상황으로 이어져 동북아에 핵보유 경쟁을 촉발할 위험성도 있다.
그렇다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예상되는 성과가 ICBM 폐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2차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한 거센 비판이 나오는 것을 피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를 의식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회담에 이어 3차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열어두는 합의를 할 수 있어 보인다. 2차 정상회담을 잠정적 중간 과정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제3의 길'이 되는 셈이다. 비판에는 '첫술(두번째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반박으로 당분간 대처할 수 있다.
2차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와 북미관계정상화, 한반도 평화정착을 준비하는 틀로서 예컨대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양국 관계를 진전시키는 틀을 만들고 핵문제의 최종적 해결은 3차회담으로 다시 미루는 셈이다. 3차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장소는 평양이 유력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당장 제재 완화를 얻어내는 대신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심 한번 쓰고 다음번에 평양 방문이라는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소규모 합의에 상대되는 '대규모 합의(big deal)'는 FFVD를 가시화하고 이를 위한 실행계획에 합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규모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합의를 실천하는 것은 장기적인 과제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소규모 합의들을 거듭하면서 최종적으로 대규모 합의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몰 딜이냐 빅 딜이냐의 문제는 당장은 논란거리지만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해소될 문제일 수 있다.
yjkang1@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