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1차회담 때와 반대로
북한과 미국의 회담 의지 역전
미 영변+α에 대한 비핵화 요구에
북 회담 미룰 가능성 전망도 나와
회담에 강력한 의지 보이는 트럼프
'의미있는' 성과낼 지 아직 미지수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예정인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모든 매체들이 매일 너댓개 이상의 관련 기사를 쏟아내는 등 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회담이 임박해지면서 국내 주요 언론사들은 벌써부터 하노이에 기자를 파견해 현지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멕시코 장벽 예산 문제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 등 굴직한 국내 이슈들이 많아서인지 2차정상회담에 대한 기사는 사실 위주로 간략하게 보도하고 있다.
우리처럼 베트남 현지 분위기 등을 전하는 요란스러운 보도는 없지만 미 언론들도 전문가들의 회담 전망을 소개하는 칼럼과 분석기사를 간간이 싣고 있다. 다만 비관적 전망이 낙관적 전망보다 우세한 것으로 나타난다.
우선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등 미 정부 정보책임자들은 지난달 의회 증언에서 북한이 궁극적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분통을 터트리면서 "학교에 가서 다시 공부해라"고 조롱까지 했지만 북한의 비핵화 전망을 비관하는 입장은 여전히 미 정부 내외에서 강력하다.
필립 데이비슨 미 인도태평양사령관도 지난 12일 상원 청문회 서면 증언에서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생산 능력을 포기할 것같지 않으며 미국과 국제사회의 양보를 대가로 부분적인 비핵화 협상을 모색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 의원들 다수와 기타 전문가들도 크게 이같은 비관적 전망에 기울어 있다.
이에 비해 낙관적 전망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감성적인 단문 트윗 수준의 발언으로 일관해 신뢰를 받지 못한다. 그보다는 북핵 실무협상을 담당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발언이 '근거 있는 낙관적 전망'의 배경이 되고 있다.
비건 대표는 북한 비핵화가 단계적으로 북미 양측이 상응조치를 취하면서 신뢰를 쌓는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비건 특별대표를 자문하는 인사들의 입장이 비건 대표의 입장에 많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WP가 소개한 자문그룹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북한이 안보를 보장받기 전에 비핵화를 이루지 않을 것이며 안보 보장은 말이나 문서로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단계적이고 (10년이 걸릴 수도 있는) 장기적인 과정을 통해 공존과 상호의존이 진전돼야 최종적으로 비핵화를 이뤄낼 수 있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 1월 31일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이같은 입장을 수용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가 '완전히 끝나야' 제재가 해제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제재 완화를 두고 협상의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 정부가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입장을 완화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신호들이 더 있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 6일 평양으로 들어가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와 실무협상을 했다. 비건 대표는 이 자리에서 양측의 요구사항을 제시만 하고 구체적 협상은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구체적 협상은 17일부터 아시아국가(하노이로 추정)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협상에 대해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 선에서 머물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불쑥 나섰다. 비건 특별대표가 평양에서 서울로 귀환하기도 전인 지난 9일 오전(한국시간) 트윗을 통해 2차정상회담이 하노이에서 열린다고 발표했다. 비건 대표로부터 평양 실무협상 결과를 보고받기도 전이다. 물론 전날 평양에서 귀환한 협상팀 일부로부터 내용을 보고 받았을 것이다.
'구체적 진전을 이루지 못한' 협상결과를 놓고 이렇게 회담 진행을 서두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의아스럽다. 특히 북한이 어제까지도 2차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때는 북한이 회담 2주전에 일정을 공식발표했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 발언을 문제삼아 회담을 취소했다가 김정은의 '사과성 친서'를 받은 뒤에야 회담 개최일정을 정했었다. 2차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의 입장이 1차 정상회담 때와 완전히 뒤집힌 모양새다.
이를 두고 주목할 만한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특사 일행의 미국 방문 의도에 대해 뒤늦게 공개되는 내용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내 한 외교소식통은 김영철 부위원장의 미국 방문은 '일종의 최후통첩'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이 제재완화를 약속하지 않으면 2차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미국이...우리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밝힌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강조했다는 것이다. 김위원장의 발언은 미국이 제재완화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 핵과 미사일 실험과 생산을 다시 재개할 수도 있다는 위협이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시히신문 서울지국장도 당시 김영철 부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핵도 미사일도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사실이라면 농담처럼 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뼈가 담긴 말이라고 마키노 지국장은 해석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누구와도 협상할 뜻이 없음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실무협상이 제3국이나 판문점이 아닌 평양이었던 점도 북한이 협상 주도권을 행사하는 증거라고 풀이했다.
심지어 17일부터 열리는 실무협상에서 미국이 '제재와 압박을 푸는' 양보를 약속하지 않으면 2차정상회담이 무산될 수도 있다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온다. 북한이 회담 일정을 공개하지 않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판빈민 베트남 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국빈방문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것을 보면 2차회담이 무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렇더라도 김정은의 하노이 방문이 단순한 베트남 국빈방문으로 그칠 지 아니면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로 이어질 지는 여전히 북한의 발표가 나올 때까지 좀 더 기다려봐야 할 듯하다.
한편 2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이미 공개적으로 밝힌 영변 핵단지와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해체 정도만 합의하는 선에서 그치면 안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과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 과학국제문제연구소장은 영변 핵시설 폐기는 상징적일 뿐인 '나쁜 조치'라고 강조했다. 2차정상회담에서 우라늄 농축시설 등 다른 비밀 핵시설들의 해체가 달성돼야 '의미있는' 비핵화가 달성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목소리를 의식한 듯 비건 특별대표도 스탠포드대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에서 영변 핵단지외 추가적인 핵시설 폐기도 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기 전에 제재 해제 없다'는 비건 대표의 발언은 '영변+α'에 대한 비핵화가 이뤄져야 제재 완화를 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뒤집어 해석하면 김정은이 약속한 영변 핵단지 폐쇄에 대해선 제재 이외의 상응조치를 할 수 있다는 셈이다. 미 국무부는 이와 관련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파격적인) 상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아직은 2차 정상회담에 대해 낙관도 비관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회담에 이르는 길은 여전히 지뢰밭이다.
yjkang1@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