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지역 의료계 "몸 부서져라 응급 진료, 정책 만든 삶 존경"
응급의료센터장, 설명절 의료 공백 막으려 초과 근무…과로사 추정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응급의료 체계 구축에 힘써 온 윤한덕(51)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설 연휴 병원 집무실에서 숨진 것과 관련, 광주· 전남 지역 의료계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를 기억하는 의사들은 "대한민국 응급의료에 일생을 오롯이 바쳤다. 환자가 우선인 의료현장을 만들어왔다"고 입을 모았다.
8일 지역 의료계에 따르면, 윤 센터장은 설 전날인 지난 4일 서울 중구 중앙의료원 행정동 센터장실 의자에 앉아 숨진 채 발견됐다.
책상 위에는 설 연휴 재난 대비, 외상센터 개선 방안, 중앙응급의료센터 발전 방향에 관한 서류가 놓여 있었다.
1994년 그와 전남대 의대 응급의학과 수련 생활을 함께 시작한 허탁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한덕이는 평생을 바쳐 응급진료 시스템을 만들었다. 몸이 부서져라 환자를 돌보고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늘 헌신했다"고 했다.
허 교수는 "수련의 시절 다른 의료분야보다 열악한 응급실 문제에 대해 수없이 울분을 토로했다. 전공의보다 경험 많은 교수들이 응급환자를 진료하고,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해왔다"고 전했다.
이어 "한덕이는 2002년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첫 발을 딛은 뒤 독립투사처럼 살아왔다. 전남대병원 응급실에서 뼈저리게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진보적 개선안을 추진했다. 늘 외로운 싸움을 했지만,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도록 세 발자국 앞을 그리며 정책을 준비했다"고 회상했다.
윤 센터장은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구축, 응급의료 전용 헬기 도입, 재난·응급의료상황실 운영, 응급의료 종사자 교육·훈련 등으로 응급환자 진료 개선에 기여했다.
허 교수는 "완벽주의자였던 한덕이에게 '밤에는 자고, 주말에는 운동하고, 일 년에 한 번 이상 제대로 휴가가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응급환자가 발생하는 사건사고에 대응하느라 사무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끝없는 밤샘 노동으로 자신을 돌보지 못한 그였다"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 "한덕이의 삶은 '응급의료'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응급환자가 제때 적절한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아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고 전했다.
김선표 조선대병원 응급의학과장도 "윤 센터장은 연휴 때 혹은 국가적 재난이 있을 때마다 응급 의료를 총괄해왔다. 응급진료정보망 구축으로 전국 권역외상센터와 응급실의 의료 공백을 없애고 체계를 촘촘히 한 그의 삶에 존경을 표한다. 그의 발자취를 제대로 이어갈 분이 계실지 걱정될 정도"라고 했다.
윤 센터장의 전남대 의대 맞선배이자 군생활을 함께한 나백주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그는)응급의료 업무만을 보고 걸어왔다. 군 복무 시절에는 응급구조사 관련 시스템을 만들었다. 응급처치 교본을 만들거나 내용이 틀린 것을 고치기도 했다. 정말 똑똑하고 소신이 강한 친구였다"고 했다.
나 국장은 이어 "최근에는 센터장 보직 사퇴 의사를 전했다. 일을 그만두는 게 아닌 평직원이나 팀장급에서 응급의료 정책을 설계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가 응급의료에 보여준 진정성과 소신을 평생 기억하겠다"고 덧붙였다.
전남대 의대 시절을 함께 보낸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광주 광산갑 지역위원장도 "윤 센터장은 학생 시절부터 헌신적이고 사명감이 강했다. 응급의학을 바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바친 그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한편 윤 센터장은 급성 심정지(심장마비)로 숨졌다는 1차 검안의 소견을 받았다. 의료원 측은 누적된 과로로 인한 사망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명절 때 업무가 증가한다.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전국 응급실 532곳과 권역외상센터 13곳의 병상을 관리하고 있다.
sdhdream@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