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사력 다해 눈떠 일본에 욕"

기사등록 2019/01/29 12:33:20

정의연 대표 "절규 가까운 분노, 욕으로 표출"

"사력 다해 눈 뜨고 이야기…이내 평온 되찾아"

2018년 1월 대장암 수술 후 건강 계속 악화돼

온몸에 암세포 번졌는데도 日고발 위해 해외로

"베트남전 한국군 성폭행 피해 여성에게 사죄"

마지막까지 "수요시위 못가서 어떡하나…미안"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에서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가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2019.01.29.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인우 기자 = 고(故) 김복동 할머니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일본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자신과 같은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사죄와 위로에도 미련을 보였다고 한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29일 김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진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김 할머니가) 어제(28일) 임종 전 온 사력을 다해 갑자기 눈을 뜨시더니 굉장히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셨다"며 "이마 위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였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 많은 말을 다 해석하지 못했지만 일본에 대한 절규에 가까운 분노를 욕으로 강하게 표출하시고 평온을 되찾으셨다"며 "베트남 사람들에게 직접 사죄의 말을 전해야 하는데 내가 못 가서 미안하다고도 하셨다"고 전했다.

윤 대표는 "할머니가 지금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것도 아직 잘 모르겠다"며 "김 할머니는 지난 1992년 (피해 사실을) 신고하신 이후 27년 간 정말 쉼없이 달리며 남을 위해 모든걸 내놓으신 분이다. 의식이 남아있을 때에도 '오늘 수요일인데 (수요시위에) 내가 못 가서 어떡하냐. 미안하다'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지난 28일 오후 10시41분께 암으로 명운을 달리한 김 할머니는 세계 곳곳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를 증언하고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한 국내 '위안부' 피해의 산 증인이었다.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만 15세였던 1940년 일본으로 끌려가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 피해를 당했다. 1947년 고향에 돌아온 김 할머니는 1992년부터 성노예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 뿐 아니라 전쟁 성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여성인권 운동가이자 평화 운동가로서도 다양한 목소리를 냈다. 2014년 3월에는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향해 "한국 국민으로서 사죄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2012년 3월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나비기금'을 발족하기도 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5월 국경없는기자회와 프랑스 AFP 통신으로부터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됐다.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는 2015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도 받았다.

김 할머니는 그러나 결국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아쉬운 눈을 감게 됐다.

윤 대표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지난해 1월5일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온몸으로 암세포가 퍼지는 것을 알면서도 김 할머니는 일본군 성노예제와 한일 위안부 합의의 문제를 세계 각지에 알리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비행기를 탔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지고 있다. 2019.01.29.suncho21@newsis.com
윤 대표는 "극심한 통증 때문에 온 장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은 꽤 된 일"이라며 "그런 상황에도 김 할머니는 지난해 말 왕성히 활동하셨다. (지난해 9월)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위한 1인 시위를 할 때도 소변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김 할머니의 장례는 여성인권운동가 시민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에 마련됐다. 빈소에서는 평화나비네트워크, 마리몬드 등의 주최로 김 할머니의 명복을 비는 추모회가 연일 진행될 예정이다.

발인은 2월1일 금요일이다. 병원에서 출발해 서울광장을 거쳐 지난 평생을 서슬퍼런 눈으로 지켜봤던 일본대사관 앞에서 노제를 치른 뒤 충남 국립 망향의 동산에 안치된다.

김 할머니가 마지막까지 "못 가서 미안하다"고 한 수요시위도 30일 예정대로 진행된다. 정의연 관계자들은 수요시위 이후 장례식장으로 돌아와 오후 2시 입관식에서 김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볼 계획이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중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윤 대표는 "생존자 수가 더 줄어들기 전에 이 문제가 해결됐으면 한다"며 "우리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세계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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