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대차 트럭, 엔진오일 연료탱크 유입...회사는 수리 거부

기사등록 2019/01/28 14:51:27 최종수정 2019/01/28 15:17:20

현대차 내부 문서 '상용차 엔진 연료 변색 관련 기술 검토 내용' 입수

'뉴 파워트럭' 등 현대 상용차 연료, 엔진오일 유입으로 시커멓게 변해

문서, '연료 변색 내용 직원 공유하고 과정비 방지 위한 정비 지침' 목적

차주 "1억 넘게 줬는데 '운행 문제 없다'며 수리 안 해줘...소비자는 '을'"

전문가 "車 수명·부품 고장의 주요 원인...사측에서 리콜해줘야 할 사안"

현대차 "변색 있지만 성능에 문제 없어...오일 교체 시기 놓쳐 색 변하기도"

【서울=뉴시스】 박민기 기자 = 현대자동차가 자사의 상용차에서 오일 유입으로 엔진 연료가 시커멓게 변하는 증상을 발견하고 자체 조사를 거친 뒤 회사 내부 직원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 '탱크 내 연료 변색 현상에 대한 기술 검토 내용 공유 및 과정비 방지를 위한 정비 지침 공지'를 목적으로 작성된 이 문서의 제일 밑에는 "차량에서 연료 변색이 발생하더라도 인젝터 등 부품을 교환하지 않도록 하고 고객 설득할 것을 요청한다"는 지시가 담겨있다. 2019.01.25. minki@newsis.com

【서울=뉴시스】박민기 기자 = 현대자동차가 제조 판매하는 준대형·대형트럭인 '뉴 파워트럭'에서 엔진오일이 연료탱크로 흘러 들어가 연료 색을 시커멓게 변하게 하는 결함이 발견됐다. 이에 해당 차주들이 잇달아 현대차에 수리 요청을 했지만, 현대차는 내부 공문을 통해 수리 대신 항의 고객을 설득하라고만 지시한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이날 뉴시스가 단독 입수한 현대차 내부 문서에 따르면 현대차는 일정 등급 이상의 회사 직원들만 볼 수 있는 공문을 통해 "필드 차량에서 연료 변색이 발생하더라도 인젝터 등의 부품을 교환하지 않도록 하고 고객들을 설득할 것을 요청"한다는 내용을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H/L 엔진 연료 변색 관련 기술 검토 내용 공지'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해당 문서는 상용차의 탱크 내 연료 변색 현상에 대한 기술 검토 내용과 함께 과정비 방지를 위한 정비 지침서로 현대차 '상용국내서비스팀'·'상용품질보증팀'·'상용품질관리부'·상용엔진품질관리부'·'PT설계개선팀' 등 5곳에 보내졌다.

공문에 따르면 현대차는 뉴 파워트럭의 연료 변색 원인으로 차량 내 인젝터 플런저의 상하 작동 시 오일이 연료 내로 묻어 들어가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오일이 인젝터 플런저에서 인젝터 리턴홀, 실린더헤드 연료라인을 거쳐 연료탱크로 들어가 엔진 연료를 검은색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회사 내부에서도 자체적인 테스트를 거쳤는데 연료로 유입되는 오일의 양이 내구성이나 차량의 수명, 부품 등에 영향을 줄 만큼은 아니라는 판단이 나왔다"며 "현대차의 버스나 트럭을 사용하는 업체들에게도 다 설명해놓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덤프트럭 등 차량의 고압분사펌프 분사 시 '오일윤활방식'과 '연료윤활방식' 등 2가지가 있는데 오일윤활방식은 오일 경로를 최대한 차단하려고 하지만 오일이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있는 만큼 극히 일부가 유입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오일은 수시로 갈아줘야 하는 소모품인데 오일 교체 시기를 놓쳐 연료가 시커멓게 변하는 경우도 있다"며 "따라서 2015년 이후 변색에 대한 클레임은 있었지만 이로 인한 부품 고장 등과 관련된 클레임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현대차는 뉴 파워트럭에서 엔진오일이 새어 나와 연료탱크로 흘러들어가 연료가 검은 색으로 변색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극미량이기 때문에 차량 성능이나 내구성 면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것이다. 즉 연료 변색이 발생하는 것은 맞지만 오일윤활방식을 사용하는 고압분사펌프에서 생길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고 변색이 발생해도 유입된 오일은 극히 소량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차주들의 수리 요청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상용차 '뉴 파워트럭' 외관. (사진 제공 = 뉴 파워트럭 차주)

하지만 차량의 엔진오일이 연료탱크로 들어가 연료 색이 시커멓게 변하는 이같은 문제에 대해 "차량 운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현대차의 주장과 달리 자동차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차량의 중대한 결함이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연료 변색 원인을 개선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방치하면 다른 부분의 부품 고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다 미세먼지를 더 많이 배출하는 등 환경적인 부분에서도 치명적이란 주장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상용차 연료가 시커멓게 변하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심장 판막에 이상이 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부품 고장으로 인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연료에 오일이 유입되면 연료 특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차량 수명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또 다른 고장이 발생할 수 있는 근본 원인이 될 수 있다"며 "2만㎞도 달리지 않은 차량에서 그런 현상이 생긴다면 당연히 리콜을 해줘야 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연료가 변색되면 질소산화물 등 대기오염물질이 더 나올 수 있고 불완전연소가 계속되면 유해가스가 굉장히 많이 나오게 된다"며 "연료 변색은 환경적인 부분에서도 조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엔진오일이 연료로 유입되는 현상은 중대한 설계 결함으로 볼 수 있다"며 "이 정도 문제가 발생했으면 회사에서 리콜 조치를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오일 유입은 배기가스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미세먼지를 더 악화시키는 등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좋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적극적으로 개선돼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국내 1호 자동차 정비 명장으로 통하는 박병일 카123텍 대표도 "현대차에서는 '극미량의 오일이 유입될 수도 있고 자체 조사 결과 차량 안전성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하는데 엔진오일이 연료로 들어가도 괜찮다는 규정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현대차의 변명을 위한 구실에 불과하고 동시에 기술력 부족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회사가 해당 차량에 대한 수리를 거부하자 차량 연료 변색 현상을 겪고 있는 차주들의 고민은 날로 깊어져 가고 있다.

【서울=뉴시스】박민기 기자 = 2017년 현대 상용차 '뉴 파워트럭'을 약 1억1000만원 주고 구입한 차주 A씨가 자신의 차량에서 나온 시커멓게 변색된 기름(왼쪽)과 주유소에서 받은 기름(오른쪽)을 비교한 사진. A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현대자동차에 수리와 부품 교체를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했다. 2019.01.25. minki@newsis.com

2017년 약 1억1000만원을 주고 '뉴 파워 덤프트럭'을 구입한 A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현대차에 수시로 연료 변색 현상 문제를 제기하고 합당한 수리와 부품 교체를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어떤 조치도 받지 못했다. 주행거리가 2만㎞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A씨는 "현대자동차 AS센터에 계속 물어봐도 '당장 차량에 문제 없으니 그냥 타라'는 말만 반복됐다"며 “운행에 문제가 없다 해도 기름이 시커멓게 변하면 되겠는가. 만일 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나라 망신이고 리콜도 바로 해줬을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아울러 "내 차만 그런 게 아니고 주변 동료들이 사용하는 현대차 트럭에서도 똑같은 증상들이 발견되고 있다"고도 했다.

또 다른 뉴 파워트럭 차주 B씨 역시 연료 변색 현상을 겪고 있지만 현대차로부터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했다. B씨는 "주변에서 트럭을 운전하는 다른 동료들이 '연료가 시커멓게 변한다'고 해서 차량에서 기름을 빼낸 뒤 직접 확인해보니 연료 변색이 이미 진행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B씨는 연료 변색을 확인한 지 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당 차량에 대한 수리나 부품 교체를 받지 못했다. 그는 "현대차에서는 연료 변색으로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트럭이 생계수단의 전부인데 혹시 이로 인해서 다른 부분에도 이상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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