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초성, 중성, 종성’이란 말은 세종대왕이 처음으로 만든 조선한자어이다. 그 출전은 훈민정음 해례본 ‘어제훈민정음’ 편의 “君字初發聲(군자초발성), 欲字中聲(욕자중성)”과 “終聲復用初聲(종성부용초성: 종성은 초성을 다시 사용함)”이다.
로마자 병음부호를 이용하기 전 옛날 중국인들은 소위 ‘반절(反切)’이라 하여 한 글자의 음을 두 부분으로만 나눴다. 예를 들어, 終자의 음을 나타내거나 가르칠 때 ‘之(지)’와 ‘戎(융)’ 두 글자의 음을 각각 반씩 이용했다. ‘之(지)’에서는 첫소리 ‘ㅈ’을 따고 ‘戎(융)’에서는 첫소리를 제외한 나머지 소리 ‘ᅟᅲᆼ’을 따, 서로 합쳐 ‘즁’이라는 음가를 표현했다.
그러니 세종대왕 당시 중국인들에게 있어 한 글자의 음을 셋으로 나눈 초성, 중성, 종성이란 언어학적 개념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중국의 대표적 사전인 ‘사해(辭海)’나 ‘사원(辭源)’에는 언어학 용어로서의 초성, 중성, 종성이 실려 있지 않다. 일본이 자랑하는 ‘대한화사전’에도 ‘종성’은 실려 있지 않으며, ‘초성(初聲)’의 경우 ‘갓난아이가 태어났을 때 최초로 발하는 울음소리’라는 전혀 다른 뜻만 실려 있다.
영어권의 상황은 어떨까? song과 같은 단음절 단어들을 살펴보면 우리말처럼 초중종성(s+o+ng)으로 삼분된다. 그러나 영어권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consonant(자음)와 vowel(모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 초중종성이란 말은 쓰지 않았다. 우리가 만든 네이버 영어사전에서나 ‘한국어의 음절에서’란 설명과 함께, 우리말 ‘초성’을 나타내는 initial consonant, ‘종성’을 뜻하는 final consonant가 보일 뿐이다.
몽골의 파스파문자 또한 초성, 중성, 종성이 존재하지만, 몽골 또한 그에 해당하는 용어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1966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게리 레드야드(Gari K Ledyard) 교수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기록된 “자방고전(字倣古篆)”의 ‘고전(古篆)’을 ‘몽고전자(蒙古篆字)’라고 해석하면서, 한글이 파스파 문자에서 그 기하학적 모양을 차용했다고 강력 주장했다.
그러나 게리 교수가 ‘몽고전자’란 말에서 자기 임의대로 뽑아낸 ‘고전’은 훈민정음 해례본(1446) 내 ‘고전’과는 전혀 다른 뜻의 말이다. 세종대왕 당시엔 ‘몽고전자’라는 말은 없었고 세종 사후 250년 후에 생긴 말이다. 즉, ‘몽고전자’는 1330~1333년에 간행된 ‘파스파자백가성교감(八思巴字百家姓校勘)’의 1699년판인 ‘화각본류서집성(和刻本類書集成)’ 권1, 272쪽에 처음 쓰인 말로 사진에서와 같다.
1330년과 1340년판에선 ‘蒙古字體(몽고자체)’로 쓰여 있던 것이, 사진의 1699년판에선 ‘蒙古篆字(몽고전자)’로 바뀌었다. 그 옆의 주석을 보면 내막을 알 수 있다. “古篆之外, 世有所見. 今得蒙古所篆百家姓, 字母見一格((글쓴이가 전통적) ‘고전’ 외에 세상에서 본 것이 있다. 이제 원나라 몽골에서 파스파 문자로 쓴 ‘백가성’ 자료를 얻으니 그 자모엔 하나의 격식을 볼 수 있다.” 각별히 유념할 점은 여기 ‘몽고소전(蒙古所篆)’에서의 ‘篆’자가 ‘~하는 바’를 뜻하는 ‘所(바 소)’자 뒤에 위치하므로, 명사가 아닌 동사 ‘쓰다(寫, 撰)’의 뜻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이걸 명사 ‘전서체’로 보면 한문해석 오류가 된다.
더군다나, 국명 ‘몽고(蒙古)’에 쓰인 한자는 몽고족의 선조인 ‘蒙兀室韋(몽올실위)’의 줄임말인 ‘몽올’의 변음 ‘몽홀→몽골’을 음역한 것이다. 중국 한자음에는 받침 ㄹ음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골’을 ‘고’로 하여 ‘古(고)’자로 음역한 것이다. 이처럼 蒙古의 古는 의미상 ‘옛날’을 뜻하는 말이 아니므로 게리 교수의 주장은 착각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훈민정음이 파스파문자를 차용한 것이 아님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좀 더 논하기로 한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heobul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