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시간강사 채용 제한, 과목 축소' 문건
한양대 학장, 10년 강사에 재계약 불가 통보
학생들 "그 많은 등록금 내는데도 권리 침해"
"대형강의, 수업 질 떨어져…학생들 요구 역행"
강사들 "우려 현실로…대학 대부분 비슷할 것"
전문가 "강사들 협박, 학생 수업권 볼모 삼아"
"재정 상태 좋은 학교들이 나쁜 해결책 제시"
강사의 교원 지위 보장 및 처우 개선을 위한 강사법은 내년 1월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 4대보험 지급이 핵심이다. 학교 측은 재정 부담을 주요 이유로 강사 채용을 제한하고 있다.
고려대는 지난달 26일 '시간강사 채용 극소화'를 목표로 하는 '강사법 시행예정 관련 논의사항' 문건을 각 학과에 발송했다. '필요불가결한 경우'가 아니면 시간강사를 채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강사가 주로 담당하던 교양과목은 종류와 수를 축소하고 가능하면 같은 과목이나 서로 다른 커리큘럼을 합치는 등 한 강의를 100명 이상 듣는 대형 강의를 권장한다. 졸업이수학점도 현행 130학점에서 120학점으로 줄인다.
한양대 모 학장은 시간강사들에게 내년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 다음 학기부터 학부와 일반대학원 학과에서 개설·관장하는 모든 교과목을 전임교원이 맡고 극히 일부 과목만 겸임교수나 특훈교수에게 배정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대학생 김강현(21)씨는 "학교에 등록금을 비롯한 많은 돈을 내고 다닌다"며 "졸업시수가 줄어든다는 건 이런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손유라(24)씨는 "이미 대형 강의에 대해서 많은 학생들의 불만이 있는데 학교 측은 오히려 수업 개수를 줄이고 대형 강의를 더 늘린다고 한다. 학생들 요구와 너무 역행한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김모(24)씨는 "대형 강의는 보통 수강생이 100명 이상인데 교수가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오는지 인지를 못하고 질문도 잘 안 받는다"며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고 토로했다.
시간강사들에게는 당장의 생계 문제와 직결된다.
고려대에서 2년째 시간강사로 일하는 김모씨는 "처음에 주변 강사들이 강사법이 시행된다는 소식에 분명히 강사 수를 줄일 것 같다고 많이 불안해했는데, 역시나 그런 논의가 오고 갔다"고 전했다.
강의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는 김씨는 "(강사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다들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학교 측에서 논의한 것은 학생들에게도, 강사들에게도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내 2년제 대학교 시간강사는 "고려대처럼 큰 규모의 학교가 강사를 줄인다는 건 그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며 "이미 서울 내 다른 대학들의 분위기가 (고려대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태경 전국대학원생노조 수석부지부장은 "지금 강사법은 강사의 고용 안정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보이는 가장 나은 법안"이라며 "일부 학교 측은 수업의 질을 포기하면서까지 강사들을 협박하고 학생들의 수업을 볼모로 잡아 강사법에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시간강사가 대학에서 맡았던 역할이 크지 않았다면 큰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그들은 교양과목의 절반 이상을 담당한다"며 "저임금으로 시간강사 노동을 착취하던 대학들이 이제는 강사를 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 연구원은 "고려대, 한양대 등 재정상태가 좋은 학교들이 먼저 나쁜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다른 대학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대학은 강사 수를 줄이거나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지 않는 다른 방법을 통해 재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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