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변별, 의사 결정 능력 없거나 미약한 자' 참작
행위의 의미 모르는 자에겐 책임 물을 수 없다는 것
'진짜 약자' 보호가 형법 취지…무죄 또는 감형 처분
의도적으로 책임 무능력 상황 만든 건 인정 안 돼
논란 초래 원인은 재판부 판단의 엄격한 기준 부재
"의사 소견서도 검증하고 종합병원 등 진단 필요"
"외국은 로스쿨에서 심신미약 과목 수강 필수화"
심신미약 처벌 강화 청원 75만명 돌파 '역대 최다'
잔혹한 살인 범행 후 우울증 약을 복용해왔다고 한 김모(30)씨 진술로 촉발된 심신미약자 처벌 강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1일 오전 11시 기준 75만여명이 동의 서명을 했다. 지난 17일 청원글을 게시하고 불과 나흘 만에 국민청원 역대 최다 동의를 기록할 정도로 여론의 분노가 노도와 같다. 이런 추세라면 100만명 돌파도 시간 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범죄 경위 및 정상참작 조건을 판단할 때 심신미약 사유는 왜 존재하는 걸까. 법적으로 심신미약 개념은 '옳고 그름을 따지고 이에 따라 행동할 능력이 상당히 부족한 상태'이다.
형법 제10조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고, 이같은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에 대한 처벌은 줄이도록 하고 있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는 "형사처벌을 위해서는 행위자의 '책임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형사상 만 14세 미만은 처벌하지 않듯이, 사리 분별 능력이 없고 행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본적인 취지는 '약자로 보이는 자'가 아닌 '진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형법은 10조3항을 통해 의도적으로 만든 책임 무능력 상황에 대해서는 감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해 악용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술에 취했거나 약을 복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감형 대상이 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허윤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는 "음주가 잦아서 술을 마시면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아는 사람이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면, 이런 경우는 심신미약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심신미약이 객관적으로 인정돼 무죄 판결 또는 감형 등을 하는 경우에는 실정법에 따라 합당한 판단이 된다.
대표적 사례로는 조두순 사건이 꼽힌다. 그는 2008년 당시 8세 아동을 잔혹하게 성폭행했으나 만취 상태였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돼 1심 징역 15년에서 2심 12년으로 형이 줄었다.
징역 12년도 중형이긴 하지만 죄질에 비해 가볍다는 논란이 장기간 지속됐다. 심신미약자 감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된 출발점이나 다름 없었다.
전문가들은 불신의 원인을 심신미약 판정의 엄격한 기준 부재로 보고 있다. 법관의 판단이 의사 소견을 참고해 나오긴 하지만 애초부터 구체적 기준이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대중적 목소리는 "심신미약자라고 봐주지 말아라"라는 외피를 띄고 있지만, 이는 사실 "당신들의 심신미약자라는 판단을 믿을 수 없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허 변호사는 "피고인이 약을 먹고 있었다는 등 변호인이 하는 주장을 토대로 재판부가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그런데 기준이 명확하게 정해진 게 없다"고 전했다. 이어 "피고인 측이 의사 소견을 같이 제출해야 하지만 돈을 주고 부정하게 소견서를 발급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않느냐"며 "그 소견서를 검증하는 과정을 두거나 종합병원 또는 대형병원에 진단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법학과 의학의 공조' 필요성을 강조했다.
곽 교수는 "외국의 경우 미래에 판검사가 될 로스쿨 학생들이 (심신미약 판결) 관련 과목을 듣는 것을 필수로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 피의자 김씨는 지난 14일 오전 8시13분께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PC방에서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생 신모(21)씨를 수차례 흉기로 찔러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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