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소리, 빗소리에서 동물 ASMR까지 확산
"고양이 골골송에 잠 잘 와…랜선집사된 기분"
돼지, 기니피그, 햄스터, 달팽이 등 음향 다양
'오독오독' '아작아작' '서걱서걱' '고롱고롱'
신선한 청각적 자극 제공하는 콘텐츠로 부상
반려동물 키우지 않는 이들은 대리만족 느껴
콘텐츠 제작 과정 중 '식사 강요' 등 우려도
1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가구 비율은 2010년 17.4%에서 지난해 28.1%로 증가했다. 국민 4명 중 1명 이상이 반려동물 사육 인구인 셈이다. 통계청은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가 2016년 기준 2조 원대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했다. 반려인 1000만 시대가 도래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현상들도 다양하게 발생하는데, 개나 고양이가 내는 소리가 담긴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율감각 쾌락반응) 영상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ASMR 영상은 뇌를 자극해 심리적 위안이나 안정을 주는 콘텐츠다. 대략 3~4년 전부터 유튜브에서 특정한 장르로 자리잡았다. 비 오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등 편안한 일상 속 소음이 대표적이다. 과자나 치킨처럼 식감 좋은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소리, 고체와 액체 사이의 질감을 가진 장난감 '액체괴물'(슬라임)을 만질 때 나는 특이한 소리도 ASMR 소재가 된다.
최근에는 ASMR의 영역이 반려동물이 내는 소리로 영역을 넓혔다. 고양이가 낮게 반복적으로 내는 '고로롱' 소리를 성능 좋은 오디오로 녹음하는 식이다. 대학생 이령(23)씨는 "동물을 키우지는 않지만 좋아해서 유튜브로 검색하다가 고양이 ASMR까지 보게 됐다"며 "고양이가 가르릉하는 '골골송'을 들으면 '랜선집사'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랜선집사는 인터넷 연결 케이블인 랜(LAN)선과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을 뜻하는 '집사'를 합성한 신조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고양이를 직접 키우지는 못하고 대신 인터넷으로 고양이 사진, 동영상 등 콘텐츠를 찾아보며 즐기는 이들을 일컫는다.
유튜브에서 '동물 ASMR'을 검색하면 개와 고양이는 물론 돼지, 기니피그, 햄스터, 달팽이 등 다양한 반려동물의 소리를 담은 영상을 찾을 수 있다. 창작자들 사이에서도 동물 ASMR은 조회수를 끌어올리는 '킬링 콘텐츠' 중 하나가 됐다. 지난해 6월 말 국내 유튜버가 올린 이른바 '미니피그 먹방 사운드'는 돼지의 식사 소리라는 생경함으로 화제가 되며 조회수가 무려 900만 회를 넘겼다.
구독자들은 콘텐츠 제작자에게 '반려동물의 이런 소리를 들려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7만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김지훈(30) 씨는 "반려견들이 바닥을 걸을 때 나는 소리를 담은 ASMR 영상 요청이 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웰시코기종인 봄이, 아름이, 다운이의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업로드하는 반려동물 유튜버다.
특히 털이 풍성한 웰시코기의 털을 빗을 때 나는 '서걱서걱'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빗질 ASMR'은 조회수 46만 회를 넘겼다. 김 씨는 "시청자들이 반려견 ASMR에 대해 자기 전에 여유롭게 듣기 좋다고 한다"며 "사람이 아닌 동물이기 때문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반응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물 ASMR은 청각적 쾌락을 준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반려인에게는 편안하면서도 기분 좋은 소리로,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이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으로 와닿는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오감이 자극될 때 만족을 느낀다"며 "최근 촉감이 독특한 액체 괴물이 인기를 끌었는데, 동물 ASMR 콘텐츠를 통해서는 청각적 만족을 크게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오감 자극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충족감도 반려동물 ASMR의 인기에 힘을 보탰다. 전문가들은 여건 상 반려동물을 키우기 힘들거나 '펫로스 증후군'(반려동물의 죽음 이후 느끼는 우울증)을 앓는 이들에게 반려동물 ASMR 영상이 대리만족이 되는 것으로 진단했다.
심용주 고양이연구소 박사는 "반려동물을 키울 때 발생하는 비용 부담이 있기 때문에 ASMR은 대리만족을 위한 대체재 개념으로 볼 수 있다"며 "반려동물이 주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상당한데, 키울 여건이 안 되는 이들이나 펫로스 증후군을 앓는 이들에게 ASMR은 일종의 위안을 주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한 살 난 고양이를 키우는 직장인 박모(26) 씨는 "콘텐츠 제작에 급급해 식사 시간이 아닌데도 사료를 준다거나, 더럽지 않은데도 억지로 씻기거나 빗긴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keg@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