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성, 27일엔 남성…'혜화역 시위' 성 대결의 장으로

기사등록 2018/10/06 12:12:55

6일 오후 3시 '불편한용기' 주최 5차 여성집회 예정

27일엔 '곰탕집 사건' 촉발 '당당위' 주최 남성집회

혜화역, 성별 대립 구도 첨예화하는 공간으로 부상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홍익대 몰카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다. 서울시 종로구 혜화역이 성(性) 대결의 장(場)이 되고 있다.

 홍대 사건이 편파 판결을 주장하는 여성들의 집회를 촉발했다면, 곰탕집 사건은 똑같이 편파 판결을 주장하는 남성들의 집회를 야기했다. 이른바 '여성 시위'는 지난 5월19일 첫 집회를 시작으로 네 차례 열렸고 6일 오후 3시 5차 집회를 앞두고 있다. '남성 시위'는 오는 27일 첫 집회가 혜화역에서 열린다. 혜화역은 '여성 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상징적인 장소다.

 이에 올해 초부터 페미니즘을 둘러싸고 주로 온라인상에서 펼쳐진 '남녀 혐오' 양상이 오프라인까지 확장하며 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사회 문제화하고 있는 각종 혐오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분위기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여성 시위가 시작된 지 5개월 만에 남성 시위까지 등장해 성별 대립 구도가 더욱 날카로워지는 형국이다.

 ◇우리도 억울하다

 '곰탕집 성추행'은 지난해 11월 대전 한 곰탕집에서 남성 A씨가 여성 B씨의 신체를 만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6개월 실형을 받은 사건이다. 대중에 알려진 건 A씨 아내가 1심 선고 직후인 지난달 초 남성 이용자가 대부분인 온라인 커뮤니티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면서다. 해당 글은 '법원이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의 일방적인 진술만으로 남편에게 실형을 선고했다'는 주장을 담았다.

 해당 글이 각종 남초 커뮤니티로 순식간에 퍼져나가면서 남성 네티즌이 들고 일어났다. 해당 재판 판결문과 사건 당일 CC(폐쇄회로)TV 자료까지 공개되자 법원이 피해 여성의 말만 듣고 편파 판결했다는 남성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남성 네티즌들은 성추행 관련 '억울한 사례'를 서로 공유히며 최근 페미니즘 확산 이후 여성이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규정하고 있다며 강력 비판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라는 남성 단체가 만들어졌다. 27일 혜화역 집회를 주도하는 게 이들이다. ▲사법부의 편파 판결을 규탄하고 ▲성평등을 내세우며 ▲남성 혐오 반대를 기조로 삼았다. 이들은 '곰탕집 성추행 사건'을 "마녀사냥에 가까운 일이며, 증거 없이도 처벌한 사례"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성 시위로 인해) 혐오로 물든 혜화역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집회 장소를 그곳으로 정했다"고 했다.
◇혐오를 부르는 혐오

 '워마드'(WOMAD) 등 페미니즘 커뮤니티는 남성들의 이같은 움직임을 즉각 비판했다. 여초 사이트에서도 일부 남성 네티즌의 거친 발언 등을 문제 삼았다. '곰탕집 사건'이 논란이 된 후 피해자 B씨에 대한 도를 넘은 인신공격성 발언을 쏟아내고, 페미니즘 자체를 비하하며, 여성을 사회 혼란의 원인으로 지목한 데 대한 지적이었다. 일부 여성은 "워마드의 남성 혐오를 비판하면서 곰탕집 사건 이후 여성을 싸잡아 욕하는 건 무슨 행태냐"고 했다.

 지난달 말 B씨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고소·조사·재판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A씨 측과 상반된 주장을 펼치자 여성 네티즌은 당당위와 남초 커뮤니티를 거론하며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이번에는 반대로 "한남들이 하는 짓이 그렇지 뭐" "한남들 손을 다 잘라야 한다" 등 남성 전체를 깎아내리는 게시물과 댓글이 쏟아졌다. 해당 기사 댓글란 또한 아수라장이 됐다. 혐오가 혐오를 낳고, 혐오가 혐오를 불러오는 악순환이 반복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곰탕집 사건이 터졌을 때 일부 남성의 반응이 마치 페미니즘에 의해 한껏 위축됐던 최근의 울분을 쏟아내는 듯하며, 그들이 생각하는 설움을 또 다른 혐오로 되갚고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반대쪽에서는 일부 여성이 모든 사안을 남녀로 분리하는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혐오를 오히려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성 향한 혐오 대결 어디까지

 이처럼 남녀 혐오 추세에 접점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성별 시위가 3주 간격을 두고 열리게 되자 최근 일련의 성대결이 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확산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5월 이후 네 차례 열린 여성 시위 관련 기사에는 남녀·여남이 수만개 댓글을 주고받으며 상대를 비방하는 상황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집회가 있던 주말을 지나 그 다음 주까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는 이와 관련된 소모적인 논쟁이 끊없이 이어지기도 했다.

 앞서 당당위 운영진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시위의 기반이 됐고  페미니즘 확산에 기여한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에 노골적인 반대 의사를 밝혔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증거 없이 증언과 진술만으로 남성을 성범죄자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며 "증거가 없어도 처벌하는 현재 상황은 크게 잘못됐고, 일종의 마녀사냥에 불과하다"고 했다. 당당위 집회에 앞서 열리는 여성단체 '불편한용기'의 집회에서 당당위에 대한 비판·비난이 나오게 되면 이후 열리는 남성 시위가 흥분된 상태로 진행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시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를 떠나서 이 같은 집회가 연달아 열린다는 것 자체가 이성을 향한 혐오를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진단도 있다.

 jb@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