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경찰이 퀴어축제 폭력 방관"
축제 당시 경찰 대응 비판 목소리 고조
"부상자 30여명, 실제로는 더 많을 것"
"맞불 집회서 경찰 확성기 사용하기도"
"적극적 조치 취하지 않아 폭력에 노출"
지난 8일 인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열린 퀴어축제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를 두고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경찰의 대응이 미진했다는 비판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평화로운 집회와 시위를 보장한다고 했던 경찰이 과격한 반대 행동을 충분히 제지하지 않아 물리적 충돌까지 사태가 비화됐다는 취지다.
11일 복수의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인천 퀴어축제 당시 경찰의 대응에 대해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기독교 단체 등 맞불 집회 참가자들이 신고된 장소를 사실상 점거하고 있었으며, 지속적으로 수위 높은 혐오 발언을 내놓았음에도 경찰이 제지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축제를 사실상 진행할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혜연 인천 퀴어축제 조직위원장은 "반대 측에서 집회 장소를 점유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신고된 공간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라며 "이후 반대 측 행동이 과격해지면서 경찰이 막아섰는데, 오히려 퀴어 축제를 하는 쪽을 둘러싸 고립되면서 생리현상을 해결하거나 음식, 물을 구비할 수도 없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 "경찰은 계속 집회를 일찍 해산하거나 행진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는 식으로 말을 했다. 깃발을 내리고 행진하라고 하거나, 행진 도중 반대 측에 확성기를 넘겨줬다"라며 "마무리 집회를 할 때에도 폭력에 노출된 상황이었고, 다시 반대 집회 쪽에 확성기를 내주는 일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맞불 집회 측이 퀴어축제 측을 압박하면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직위 측은 "살점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물려서 다치거나 할퀸 자국이 심한 사람도 있다"라며 "공식적으로 집계된 부상자만 30여명이고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했다.
인권단체들은 평화적인 집회·시위를 보장한다는 경찰이 신고된 행사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집회 조기 종결을 권유하거나 맞불 집회 측에 확성기를 내줬던 것 등은 평화 집회를 보장해주는 적절한 관리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이들은 강조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인천 퀴어축제 사태와 관련한 성명에서 "경찰은 1000여명의 병력을 투입했으나 평화적으로 집회·시위를 보장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라며 "축제장 곳곳에서 벌어진 폭력에 경찰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고 이어지는 폭행 신고에도 불구하고 출동하지 않았다"라고 제시했다.
이어 "정당한 절차를 통해 신고한 행진 또한 방해로 인해 계획대로 진행할 수 없었으나 경찰은 적절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며 "평화적 집회·시위에 참여한 참가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집회 참가자들에게 행해진 폭력을 방치하고 방관한 경찰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퀴어 축제에 반대하는 쪽에서 혐오 행동을 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라며 "정상적으로 신고된 집회를 보장할 수 있는 조치가 단호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집회를 방해하러 온 세력과 한편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의심할 법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일선 경찰서나 담당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문제가 아니다"라며 "평화로운 집회와 시위를 보장한다는 기조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를 경찰에서 밝혀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한편 조직위 측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고 현장 피해 사례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서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s.wo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