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 꼬인 비핵화·종전선언···文대통령 '중재외교' 재시험대

기사등록 2018/08/28 05:01:00

정세현 "폼페이오 역할 文에게 넘어와···중재자役 나설 기회"

'핵리스트-종전선언 맞교환'···폼페이오 기대성과 고스란히 떠안아

"文대통령 외에 나설 사람 없어"···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지적도

【서울=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 (그래픽=뉴시스DB). 2018.05.11.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무산되면서 역설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론이 주목받고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을 살려나가면서 동시에 연내 종전선언을 성사시켜야 하는 두 가지 과제를 오롯이 떠안게 됐다는 것과 함께 문 대통령의 중재외교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청와대는 당초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시기와 의제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결과와 연관 지으며 가변적일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4일 정례브리핑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폼페이오 장관 방북 이후 회담 일정과 안건들이 구체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는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의 핵 물질·시설 리스트 제출과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 방안을 맞교환 한다는 전제 위에서 남북 정상회담의 시기는 물론 의제까지 결정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혔다.

  아울러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 이후 귀국해 결과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북 결과를 공유한 이후 남북 정상회담의 날짜와 의제 등을 밝힐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김 대변인의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해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큰 진전을 이뤄내기를 바란다"라는 말에서 청와대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미국 현지시각) 트위터를 통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 사실을 알리면서 모든 것을 원점에서부터 재논의 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폼페이오 장관이 4차 방북을 통해 북한과 비핵화와 관련된 진전된 합의를 이끌어 내면 그 위에서 종전선언과 함께 경협 등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논의를 구체화 시키겠다는 청와대의 구상이 흐트러지게 된 것이다. 스텝이 꼬인 측면이 강하다.

  청와대는 당장 9월 중으로 합의한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 남북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당혹스러운 기색이 여전히 감지된다.

  문 대통령 입장으로서는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조치의 이행을 설득해야 하고, 동시에 종전선언과 남북 경협 구상 등 많은 의제들을 논의해야 하는 버거운 상황이다.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개소도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김의겸 대변인이 27일 정례브리핑에서 남북연락사무소 개소와 관련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과 남북 정상회담 등 순조로운 일정 속에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다"면서 "그에 맞춰 다시 한 번 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도 고민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급격한 한반도 정세변화 국면에서 문 대통령이 또 한 번 고도의 중재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때라는 요구의 목소리가 청와대 안팎에서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5월 북미 정상회담 취소 때 워싱턴과 판문점을 숨가쁘게 오가며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문 대통령의 노력이 또 한 번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26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무산으로 오히려 대통령의 역할은 더 커진 것이 아닌가 싶다"며 "북미 간 (협상이) 경색된 상황에서 막힌 곳을 뚫어주고 북미 사이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문 대통령의 촉진자, 중재자로서의 역할이 더 커진 것이 객관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7일 KBS 라디오 '정준희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비핵화와 관련해서 북한의 적극적인 행보를 독촉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폼페이오 방북이 늦어졌다"며 "오히려 문 대통령이 운전자 내지는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평가했다.

  다만 문 대통령의 역할론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외부 변수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적극적 중재 역할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27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의 역할론과 관련해 "청와대에서 우리의 역할이 넓어졌다고 얘기를 하는데, 넓어진 게 아니라 우리 외에는 움직일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kyustar@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