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간 적립배율 1배 목표…기금안정 담보 의지
기금운용에서도 장기정책 수립으로 신뢰 회복
70년뒤 부과방식 전환?…복지부 "그런 의미 아냐"
전문가들이 제시한 제정목표에 따르면 올해 20세인 국민연금 신규 가입자도 90세까진 안심하고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목표 달성을 위해선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해 '더 내고도 덜 받는 것 아니냐'는 불만은 계속 되고 있다. 정부가 기금 소진 시점만 늦출 게 아니라 노후소득 보장 수준을 포함한 사회적 합의 도출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15년째 반복되는 '기금고갈 공포'…원인은?
지난 17일 민간위원이 주축인 3개 자문위원회에서 기금소진 시점이 3년 앞당겨져 노후소득 보장 수준에 따라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자문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국민들 사이에선 국민연금을 둘러싼 우려가 쏟아졌고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연금 폐지 주장까지 올라왔다.
과거 위원회를 비롯해 학계, 연금전문가 등은 이런 불신의 원인을 '불분명한 재정목표'에서 찾았다.
국민연금은 '소득의 3%(보험료율)만 내면 노후에 평균소득의 70%를 보장(소득대체율)해주겠다'며 1988년 출범했다. 1998년 보험료율이 9%로 오르고 소득대체율은 2028년 40%를 목표로 매년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낸 돈보다 많이 받는' 구조다.
공적연금을 운용하는 나라들에선 이처럼 수지 불균형 상태인 기금의 장기적인 변동 추세를 확인하고 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위해 재정계산을 시행한다. 우리는 2003년부터 5년마다 재정 건전성을 점검한다. 국민연금에 대한 '정기 검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재정계산에선 현행 국민연금 적립금이 언제쯤 소진될지만 5년마다 알려줬다. 고갈 시점을 늦추거나 적립금 없이 제도가 운용되도록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목표가 불분명했다. 암 진단만 내려놓고 입원시기나 수술날짜는 알려주지 않은 셈이다.
뚜렷한 재정목표가 없다 보니 같은 재정계산 결과를 놓고 이해관계에 따라 기금에 대한 판단도 제각각이었다.
늘어나는 급여에 대비해 보험료율 인상이 필요한데도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보험료율을 20년째 9%에 묶어놨다. 한국은 노인빈곤율이 46.5%(2016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2.5%·2014년 기준)보다 3배 이상 높아 국민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 자문단 '향후 70년간 연금지급 걱정 마세요'
대학교수와 시민단체 대표 등 민간위원을 중심으로 정부 인사가 참여한 이번 제도발전위원회는 '적립배율 명시화'를 정부에 제안했다.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세 차례 재정계산 때 명시 필요성을 시사하거나 복수안을 제시하던 데서 한 걸음 나아갔다.
재정목표론 '70년 적립배율 1배'다. 2088년 연초에 쌓아둔 적립기금으로 그해 가입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급여 등 총지출액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올해 20세인 국민연금 가입자도 90세까진 '연금을 못 받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70년간 연금 재정을 안정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추산결과를 들어 국민들에게 보험료율 인상의 필요성을 설명하겠다는 게 올해 제도발전위원회의 공통된 생각이다.
올해 26.3배인 적립배율을 2088년 1배로 유지하려면 9%인 보험료율은 인상이 불가피하다. 한 번에 올린다고 가정할 때 2020년엔 16.02%, 2030년엔 17.95%, 2040년엔 20.93%가 돼야 한다.
다만 재정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이행경로에 대해선 위원 간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소득대체율을 45%로 고정하고 내년 11%로 즉각 올리거나, 소득대체율은 지금처럼 떨어뜨리되 10년에 걸쳐 13.5%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두 가지 재정 안정화 방안을 제시했다.
김상균 제도발전위원회 위원장(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은 공청회에서 "재정목표가 없으니까 어디로 제도개선을 해야 할지 목표가 불투명했다"며 "앞으로 재정계산은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재정계산에 임하고 논의하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보험료는 더 내는데 노후에 덜 받는다?
위원회는 재정목표 설정으로 불명확한 국민연금 재정구조에 따른 국민 불신을 완화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국민들 반응은 달랐다. 보험료율 인상에도 소득대체율은 그대로거나 지금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시되는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을 전제로 한 명목 소득대체율이다. 실제론 가입기간이 그보다 짧아 받는 액수도 적다.
시민단체인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에 따르면 명목 소득대체율이 45%일 때 실질 소득대체율은 28.1%에 불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 불안을 해소하려면 실질 소득대체율을 30~35%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여기에 재정목표를 '70년 적립배율 1배'로 확정할 땐 현재 소득이 있는 세대가 낸 보험료로 은퇴세대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방식에 대해 정부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토론회에서 "70년 적립배율 1을 목표로 잡았다면 2088년 말에는 부과방식으로 이행한다는 걸 밑바닥에 깔고 있는 것"이라며 "부과방식으로 가겠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못하고 적립배율 목표를 통해 천명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재정목표는 제도개선이 아닌 기금운용 측면에서 더 의미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원종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금까지는 '기금운용을 잘하자'였지 '왜 운용하고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지'가 부족했다"며 "재정목표가 확립되면 기금운용도 장기 정책을 세워 미래 수익률 달성 목표를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금운용 쪽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limj@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