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에 '재판 지연' 절차 구체 논의 정황
김기춘·윤병세 등 전 정부 관계자 줄소환
'영장 다수 기각' 행정처 자료 확보는 더뎌
검찰은 당시 전범 기업에 유리한 의견서를 작성하는데 주저했던 외교부와 달리 법원행정처가 적극적으로 이 절차에 임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이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사건 처리 방향을 두고 논의를 벌였던 이들 다수를 소환 조사했다. 하지만 당시 법원행정처 등 상대로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잇따라 기각되면서 윗선 수사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 1·3부는 2013~2014년 김 전 실장과 당시 법원행정처장 등이 함께한 자리에서 강제 징용 재판 처리 절차 등을 논의한 정황을 관련 문건과 관계자 진술을 통해 확인했다.
아울러 2013년 말부터 2016년 말까지 외교부 당국자와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 등이 이 사건 세부 처리 방향 등을 검토한 문건 역시 확보하고 있다.
특히 2016년 9월 만남을 담은 문건에는 임 전 차장이 재판 지연 절차와 이에 소요되는 기간을 설명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차장은 당시 만남에서 "외교부로부터 의견제출 절차 개시 시그널을 받으면 대법원은 피고 측 변호인으로부터 정부 의견 요청서를 접수받아 이를 외교부에 그대로 전달할 예정"이라며 "외교부가 의견서를 늦어도 11월 초까지 보내주면 가급적 이를 기초로 최대한 절차를 진행하고자 한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검찰은 외교부가 의견서를 제출한 2016년 11월 이전 양측이 의견서 내용을 두고 논의한 정황도 포착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기는 것이 좋은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이다. 외교부가 실제 제출한 의견서에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할 경우 예상되는 부정적 측면이 강조됐다.
반면 법원행정처 등 상대 자료 확보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앞서 검찰은 강제 징용 사건 소송 관련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행정처 국제심의관실 등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외교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문건을 토대로 외교부 관계자들을 접촉한 전·현직 근무자에 대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도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관여 윗선 수사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관련자 소환을 통해 추가 진술 등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압수수색 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경우 수사 지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실무자급에 대한 자료 제출 또는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는 수순으로 수사가 진행됐어야 정상적"이라며 "현실적으로 그렇게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kafka@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