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국악, 음악 이상의 존재 가치···'소녀를 위한 아리랑'

기사등록 2018/08/15 16:24:47
영화 '귀향'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누군가가 겪은 혹독한 고통을 이해할 수 없음이 야속하다. 하지만 음악은 그 섭섭함을 조금이나마 달래준다. 수치화, 계량화할 수는 없어도 공감을 통해 아픔을 덜어내는 마술.

올해 첫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밤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펼쳐진 기적 같은 풍경이다. 국립국악원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마련한 '소녀를 위한 아리랑'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고 위로하는 자리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1991년 8월14일 위안부 피해 문제를 세상에 처음 알린 날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2012년 타이완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지정했다. 대한민국은 지난해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올해가 첫 기념일이다.

'꿈 꾸는 소녀' '짓밟힌 꽃잎' '기리는 마음' '다시 아리랑' 등 4막으로 구성된 공연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삶과 흔적을 조심스레 좇았다.
 
순수했던 소녀시절의 기억들을 표현한 국립국악고등학교 학생들의 ‘꿈꾸는 소녀-강강술래’는 아련했다. 진도 씻김 굿 중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넋풀이', 남도의 무속음악에 뿌리를 둔 즉흥 기악 합주곡 '시나위'에 염경애의 구음과 복미경의 나쁜 기운을 없애는 '살품이 춤'이 더해진 장면은 '짓밟힌 꽃잎들'에 대한 위로가였다.

강강술래
동해안별신굿보존회는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해안오구굿' 중 망자를 불러 가족과 작별을 나누는 '초망자굿'을 선보였는데, 무대 예술은 일종의 제의라는 걸 깨닫게 한다.

마지막 순서는 '다시 아리랑'.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국악관현악과 함께 소리꾼 김용우와 김나니가 중국 옌볜에서 전승되는 '기쁨의 아리랑',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삶을 담은 '어느 할머니의 극락'을 노래했다.

이어 출연자와 관객 모두가 '아리랑'을 부르며 화합의 장이 펼쳤다. 현재까지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생존자는 스물일곱 명. 애초 경기 광주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후원시설 '나눔의 집' 할머니 두 분이 이날 공연을 지켜보려 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함께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밝음 속에 구슬픔과 애달픔이 녹아든 장단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향한 뜨거운 애도, 그리고 위안이었다.

각 프로그램 사이에는 위안부 피해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귀향'(감독 조정래)의 일부 장면,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한 그동안의 노력들이 담긴 영상도 삽입됐다.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사이에서 헤매는 소녀를 위한 아리랑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마음 속에 돌림노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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