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상회
2013년 부산일보와 영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와연씨 첫 시집이다. 친숙한 일상의 풍경에서 낯선 감각들을 포착,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냈다.
'술은 병 속에 담겨 있지만 사람의 속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또 한 명의 다른 사람이 된다// 숨어있던 성격의 사람으로/ 한 무리 취객들이 왁자지껄하다/ 오늘은 각자 서로 모르던/ 술 속의 사람들끼리 어울려 흥겹다/ 말이 없던 사람을 밀치고/ 말이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타인들' 중)
정 시인은 "시를 쓴다는 것은 세상의 덕장에 막대기 하나 꽂고 나를 말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허수아비가 늘 허수아비이듯 가벼운 것들은 다 덕장을 거쳐 온다. 깡마른 이름 하나 얻고자 밤과 낮의 덕장에서 가슴과 고민의 덕장에서 말리고 또 말려 얻은 이름이 하나 있다." 156쪽, 천년의시작, 9000원
1990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김중식씨 두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가 고난받는 삶의 형식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인간의 위엄을 기록하는 영혼의 형식"이라고 소개했다.
"신장개업 음식점 앞에서/ 바람 잔뜩 들어간/ 키다리 풍선 인형이/ 미니스커트 아가씨와 함께/ 관절 꺾는 춤을 추고 있다/ 기마 체위로 오르내리는 식은 불꽃/ 순대를 꿈틀거리며 스텝 없이 몸부림만 있는,/ 흥분하지만 표정이 없는/ 에어 댄서/ 무릎 꿇었다 화들짝 일어서는 게/ 통성기도를 할수록 버림받는 자세다/ 해 떨어질 때/ 다리 풀리고 풀 죽은 거죽만 남아/ 말없이 제정신도 아닌 헛바람 허수아비"('키다리 풍선 인형' 전문)
김 시인은 "지상에 건국한 천국이 다 지옥이었다"며 "삶은 손톱만큼씩 자라고 기울었다. 지구를 타고 태양을 쉰 번 일주했다. 봄 새싹이 다 은하수의 축전이었다. 천국은 하늘에, 지옥은 지하에, 삶과 사랑은 지상에." 146쪽, 8000원, 문학과지성사
이승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썼다. 이 교수는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화가 뭉크와 함께',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비망록'이 당선돼 시인 겸 소설가가 됐다.
'오죽했으면 죽음을 원했으랴/ 네 피고름 흘러내린 자리에서/ 꽃들 연이어 피어난다/ 네 가족 피눈물 흘러내린 자리에서/ 꽃들 진한 향기를 퍼뜨린다// 조금만 더 아프면 오늘이 간단 말인가/ 조금만 더 참으면 내일이 온단 말인가/ 그 자리에서 네가 아픔 참고 있었기에/ 산 것들 저렇듯 낱낱이/ 진저리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전문)
이 교수는 시인의 말에서 "바라보고만 있다가 다가가고자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살아 있는 것들을 내가 다가가 만졌을 때 반응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 많은 우회로를 걸어 시로 돌아와 내 체온을 전했던 생명체들이여.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이치는 너희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누추하기 짝이 없는 노래 몇 곡조 목 쉬도록 부르는 일, 이 고약한 일뿐이로구나." 192쪽, 1만2800원, 문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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