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주거지에서 문화발전소로'…홍대앞의 어제와 오늘

기사등록 2018/07/05 11:22:50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시립대(연구책임 남기범)와 공동으로 홍대앞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담은 '홍대앞 서울의 문화발전소'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5일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홍대앞은 당인리 화력발전소로 무연탄을 운반하는 당인선 철길을 따라 일제강점기 형성된 지역이다. 해방 이후 시행된 서교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주거지가 조성됐다.

 주거지 조성 당시에는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고급주거지로 인기를 끌었다. 1955년 홍익대가 이전해오면서 이 일대는 대학가를 이뤘다. 미술대학의 성장으로 1970년대부터 미술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1990년 이후 댄스클럽과 라이브클럽이 홍대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클럽들은 획일화된 대중문화가 아닌 새롭고 대안적인 놀이문화를 찾던 이들의 문화해방구이자 놀이터가 됐다. '드럭'은 록음악 전용 감상실로 '크라잉넛' 등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공연장소였다. 1992년 개점한 '스카(SKA)'는 록카페형 댄스클럽의 시초로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홍대앞에 자리 잡은 카페와 대규모 클럽, 독창적인 숍 등은 상업적 자본과 결합해 소비 위주 상업문화를 만들어냈다. 지하철 6호선과 2010년 경의중앙선, 공항철도의 개통으로 몰려드는 외국인 관광객 등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홍대앞은 점차 상업화의 길로 들어섰다.

 홍대앞 상업화 과정 초기인 1기(1990년대)에는 상업·문화적 발전이 동시에 진행됐다. 고급카페·음식점, 세련된 프랜차이즈 점포 등이 들어서는 한편 독립문화, 대안공간, 인디 레이블 등이 더불어 성장했다.

홍대 상업화 2기(2000~2010년)에는 걷고싶은거리 사업 등 공공 지원이 증가하며 홍대앞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시기부터 홍대앞 장소의 성격이 인디문화에서 상업 공간으로 변화되기 시작했고 상업과 문화 공간의 갈등이 불거졌다.
 
 홍대 상업화 3기(2011년 이후)에는 공항철도가 개통된 2010년 이후 홍대앞에 유동인구가 증가했다. 그 결과 음식점이 늘어났다. 동시에 외국인 관광객이 유입되며 급격한 상업화가 이뤄진다. 이 시기는 그나마 남아있던 홍대앞 예술문화와 인디문화가 가파르게 위축된 시기다. 젠트리피케이션과 투어리스피케이션 등 과잉관광화(overtourism)가 나타났다.

홍익대 미대생들 역시 상업화의 물결을 거스르지 못했다.

 홍대 미대생과 건축학도들은 주로 망원동과 청기와주유소 일대 주택 차고나 지하실을 작업실로 이용했다. 그러다 1984년 홍수를 겪으면서 와우산 일대로 작업실을 옮겼다. 임대료가 싸 108작업실(100만원 보증금에 월세 8만원), 208화실 등 이름으로 불렸다. 이후 작업실은 입시생을 위한 공간, 예술가의 교류 장소로도 활용됐다. 그러다 홍대앞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점차 임대료가 싼 상수동, 합정동 등 인근으로 이동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홍익대 미대를 중심으로 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와 작업실 문화에서 확장된 예술가들의 클럽모임이 형성되어 독자적인 문화가 생성되는데 이것이 발전되어 독립문화를 이루게 된다"며 "이들은 대중적인 문화가 아닌 비주류의 음악과 예술의 취향을 지닌 부류들로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고 이런 분위기는 클럽이 번성할 수 있는 기반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daer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