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에 따르면 홍대앞은 당인리 화력발전소로 무연탄을 운반하는 당인선 철길을 따라 일제강점기 형성된 지역이다. 해방 이후 시행된 서교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주거지가 조성됐다.
주거지 조성 당시에는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고급주거지로 인기를 끌었다. 1955년 홍익대가 이전해오면서 이 일대는 대학가를 이뤘다. 미술대학의 성장으로 1970년대부터 미술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1990년대 중반부터 홍대앞에 자리 잡은 카페와 대규모 클럽, 독창적인 숍 등은 상업적 자본과 결합해 소비 위주 상업문화를 만들어냈다. 지하철 6호선과 2010년 경의중앙선, 공항철도의 개통으로 몰려드는 외국인 관광객 등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홍대앞은 점차 상업화의 길로 들어섰다.
홍대앞 상업화 과정 초기인 1기(1990년대)에는 상업·문화적 발전이 동시에 진행됐다. 고급카페·음식점, 세련된 프랜차이즈 점포 등이 들어서는 한편 독립문화, 대안공간, 인디 레이블 등이 더불어 성장했다.
홍대 상업화 3기(2011년 이후)에는 공항철도가 개통된 2010년 이후 홍대앞에 유동인구가 증가했다. 그 결과 음식점이 늘어났다. 동시에 외국인 관광객이 유입되며 급격한 상업화가 이뤄진다. 이 시기는 그나마 남아있던 홍대앞 예술문화와 인디문화가 가파르게 위축된 시기다. 젠트리피케이션과 투어리스피케이션 등 과잉관광화(overtourism)가 나타났다.
홍대 미대생과 건축학도들은 주로 망원동과 청기와주유소 일대 주택 차고나 지하실을 작업실로 이용했다. 그러다 1984년 홍수를 겪으면서 와우산 일대로 작업실을 옮겼다. 임대료가 싸 108작업실(100만원 보증금에 월세 8만원), 208화실 등 이름으로 불렸다. 이후 작업실은 입시생을 위한 공간, 예술가의 교류 장소로도 활용됐다. 그러다 홍대앞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점차 임대료가 싼 상수동, 합정동 등 인근으로 이동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홍익대 미대를 중심으로 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와 작업실 문화에서 확장된 예술가들의 클럽모임이 형성되어 독자적인 문화가 생성되는데 이것이 발전되어 독립문화를 이루게 된다"며 "이들은 대중적인 문화가 아닌 비주류의 음악과 예술의 취향을 지닌 부류들로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고 이런 분위기는 클럽이 번성할 수 있는 기반을 이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