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기예프가 런던 심포니와 내한한 열한살 때는 깜짝 협연자로 나섰다. 열세 살 때부터는 정명훈(65)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의 지지와 응원으로 서울시향, 도쿄필하모닉 등과 한 무대에 올랐다.
"게르기예프 선생님의 오디션을 보고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연주하게 됐고, 정명훈 선생님의 오디션을 보고 서울시향과 함께 하게 됐지요. 부담이 들기보다는 기뻤고 신기했어요. 훌륭한 분들과 좋은 음악을 연주했으니까요. 재능을 인정 못 받을까 부담은 없었냐고요? 아니요, 저로 인해 ‘훌륭한 곡이 잘 전달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있었죠."
우문현답이다. 국내외에서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으며 신동으로 불린 임주희는 기쁨과 부담을 동시에 느끼지 않느냐는 물음에 자신의 연주처럼 유려한 답을 들려줬다.
올해 예술감독으로 위촉된 스타 피아니스트 손열음(32)이 실내악 위주였던 이 음악제에 오케스트라, 리사이틀 등 다양한 형식의 공연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임주희가 낙점됐다.
임주희는 열 살도 채 안 된 나이로 게르기예프와 4번 협연한 것이 음악 인생에 큰 동기 부여가 됐다고 돌아봤다. 특히 게르기예프는 리허설이 짧기로 유명한 지휘자다. 무대 경험이 많지 않는 임주희와 예술의전당에서 런던심포니와 협연할 때도 리허설 시간은 9분에 불과했다.
협연자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판단이다. "무대에 서면 꼬마가 아니라 연주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연주를 하게 되는 순간, 제 나이를 잊어요. 하하하."
'평창대관령음악학교' 출신이기도 한 임주희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어릴 때부터 동경해온 선생님들과 함께 해서 영광"이라며 기뻐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청중이 공존하는 대단한 음악제에서 첫 독주회를 하게 돼 정말 기뻐요.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는 제가 아홉 살에 손 감독님 덕분에 들었던 곡인데 너무 감동을 받아서 아직도 잊히지가 않죠."
프로그램에는 쇼팽 발라드 1번 G단조 op.23과 녹턴 C# 단조 그리고 폴로네이즈 A 플랫 장조 op.53 ‘영웅’, 차이콥스키 둠카 op.59,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B 플랫 단조 op.36 등이 포함됐다. 임주희가 평소 좋아하는 곡들 위주로 골랐다.
"쇼팽도 그렇고,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후기 낭만주의 곡들을 좋아해요. 특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종소리 같은 것이 들려요. 종소리를 모티브로 한 주제가 나오는데 그것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어요."
임주희의 연주가 지루하지 않고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평을 듣는 이유다. 그림 실력도 뛰어나 손열음의 모습을 똑같이 스케치한 그림은 주변에서 크게 주목 받기도 했다.
하루에 두 편씩 영화를 보는 날이 잦을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는 그녀이기에 연주도 이미지적이다. 히어로 피겨를 모을 정도로 마블 영화광인데, 고전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짐 캐리 주연 '트루먼 쇼' 등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는 모두 보고 있다.
임주희의 또 다른 장점은 공감 능력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자꾸 사라지는 다운증후군 친구가 위험할까봐 찾아다니기 일쑤였고, '코코'와 '마루'는 병들어서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개들이었다. 열정적인 30세 여성 CEO와 은퇴한 70세의 우정을 그린 영화 '인턴'을 보고 애늙은이처럼 펑펑 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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