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선정위원회(이명현·엄정식·구양근·박영자·염정임·고봉진)는 옷을 허술하게 입은 탓에 사람들에게 홀대받은 작가가 견고한 자긍심으로 해학과 반전의 미학을 보여준 점을 높게 평가했다.
한혜경 심사위원(명지전문대 문예창착과 교수)은 "날개가 허술해 무시당해도 개의치 않는 작가의 모습은 그 내면이 단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겉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이의 호감을 얻기 위해 멋진 날개를 달 필요가 없는 것"이라며 "그렇다고 날개를 중시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견고한 자긍심으로 인해 모든 걸 웃음으로 포용하는 여유가 해학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음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경북 안동 출신인 이 교수는 경북대 사대부고, 서울대 교육학과를 나왔다. 26세에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으며 웨스턴 온타리오대학교 교육심리학과 교수,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를 지냈다.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꽃다발 한 아름을' '꽃 피면 달 생각하고'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그리움 산국화 되어' 등의 수필집을 냈다. 1998년 한국현대수필문학상, 2010년 민초문학상을 수상했다.
◇옷이 날개다
"사람은 옷을 잘 입고 다녀야 하느니라." "옷이 날개다." 이런 말은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경고다. 이 경고를 무시하고 날개를 허술하게 달고 나갔다가 홀대를 받은 이야기 몇 토막.
#제 1화
한국 E여대에 나가 있을 때 은퇴가 가까워 오는 어느 날이었다. 나 혼자서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인사동엘 나갔다. 인사동은 작은 동네지만 아직도 서울 옛 모습이 다른 동네보다는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100개가 넘는 화랑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인사동 골목. 그 날 미술 전시회가 열리는 화랑만 해도 10개는 넘었지 싶다.
나는 목적하는 곳도 없이 이 화랑 저 화랑을 돌아다녔다. 어느 서예 전시회가 열리는 큰 화랑에 들어갔다. 그 전시회에 작품을 내는 회원들이 부유한 사람들인지 전시장 치장이 여간 사치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는 지나치게 화려하게 꾸며 놓은 전시회에 오면 '이런 사람들은 예술 전시회를 하나의 패션쇼(fashion show)로 생각하는구나'는 생각이 들어 불쾌해진다.
그런데 어떤 작가가 남명 조식의 시구를 써 논 것을 보니 남명의 '명'자를 잘못 쓴 것이 눈에 띄었다. 어두울 명(冥)자를 써야할 것을 바다 명(溟)자로 써 논 것이다. 그 전시회에 출품 작가인 듯 가슴에 큰 꽃을 달고 있는 사람에게 남명의 명자가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해 주었다. 설명은 간단했다. 남명의 명은 바다 명(溟)자가 아니고 어두울 명(冥)자라고. 내 설명을 들은 작가는 내 아래위를 유심코 훑어보더니 '네까짓 게 뭣을 안다고'하는 무시하는 표정으로 "틀린 데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한마디로 나를 얕잡아 보는 것이었다. 내가 남명의 15대손 J교수가 준 <남명집>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그렇게 적혀 있다 해도 막무가내 "틀린 데가 없다"는 고집이었다. 이런 결정적인 훜(hook) 한 방 메겼는데도 끄떡 않는 상대를 내가 어떻게 당하겠는가. 돌아서서 혼자말로 욕을 중얼거리며 화랑을 나오고 말았다.
경북 안동시에 있는 민속 박물관에 들렀을 때다. 안동은 내 고향, 구태여 뽑스리고 갈 이유가 어디 있나, 운동화에다 청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녔다. 박물관 어느 기둥에 천자문 글귀를 적어놨는데 보니 "忠則盡命이요 孝當竭力이라(충즉진명/효당갈력: 충성은 곧 목숨을 다하는 것이요 효도는 마땅히 힘을 다하는 것이다.)"고 적힌 주련이 눈에 띄었다.
내가 알기로는 천자문에 나오는 순서는 효당갈력이요 충즉진명이지, 충즉진명이요 효당갈력은 아니다. 있어야 할 내용은 다 있는데 구태여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아서 무엇하랴만, 천자문에 나오는 순서로 말하면 효당갈력이 먼저라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직원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시큰둥한 표정으로 "네, 네."하면서 '어서 빨리 네 갈 길이나 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마침 가지고 다니던 내 수필집 한 권이 있기에 그 청년을 주고 자리를 떴다.
캐나다에 돌아온 지 며칠 안 되어 내게 전자우편으로 편지 한 장이 왔다. 민속 박물관의 그 젊은이가 보낸 것이다. "…대선배님을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사실 저도 수필 쓰는 사람으로 경북문단에…" 자기가 수필 쓰는 사람이니 내가 대선배가 된다는 말이다. 그냥 보통 선배가 아닌 대선배라. 허허. 아무튼 그곳에서 일어난 일화도 이 대선배님께서 허술한 날개를 달고 가셨던 것이 탈이었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제3화
허술한 차림으로 있다가 내 아버님, 어머님한테 홀대를 당한 얘기를 해야겠다. 내가 학위를 받고 얻은 첫 직장은 벤쿠버에서 600㎞쯤 떨어진 넬슨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4년제 대학이었다. 교수로 발령이 나자마자 나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캐나다에 방문 초청을 했다. 김포공항에서 작별을 한 후 5년 만에 찾아온 만남이었다. 그때 공항에 마중을 나온 사람은 나 이외에 우리와 가깝게 지내던 C교수 밖에 없었다. 내가 공부하던 대학에 수학교수로 있던 C씨는 당시의 유행 따라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장발족으로 몸치장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분이었다. 그런데 C교수를 인사시켰더니 아버님께서 본 척 만 척, 내가 민망할 정도로 홀대하는 것이 아닌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넬슨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텔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밤중에 잠이 깼는데 내외분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그 옛날 어릴 적 내 생가에서 밤이면 자주 있었던 그 그리운 풍경! 자세한 말꼬리는 잊어 버렸으나 대략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버지: 동렬이 자가 직장도 없는 모양일세. 해가지고 다니는 꼴 좀 보소. 그리고 아까 공항에서 수학교수라고 소개하던 그 녀석. 그게 무슨 교수야, 지게꾼이지. 아마 우리가 온다니까 이거 큰일 났다 싶어 자기 친구한테 네가 대학 교수나 해 달라고 부탁한 모양인데….
어머니: 동렬이 자동차 꼴 좀 보소. 그게 어찌 직장 가진 사람 차인가요. 그 수학교수인지 뭔지 하는 사람은 이발할 돈도 없는 가난뱅이던데요 뭘….
나는 잠간 사이에 직업도 없는 실업자가 되어 버렸고, 죄 없는 C씨는 이발할 돈도 없는 극빈자가 되고 말았다. 옷이 날개란 말은 외화내빈이란 말과 통한다. 겉으론 번듯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궁색하다는 말이다. 그럼 나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은 무엇일까? 외빈내빈(外貧內貧)이라면 나를 너무 깍아 내리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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