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계의 떠오르는 창작진이 의기투합한 작품이어서 눈길을 끈다. 러시아 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법정 추리물이라는 장르로 변주한 각색이 일품인 '카라마조프'의 작가 정은비(29), 낭만적이면서 다채로운 선율로 호평을 들은 뮤지컬 '쥴리앤폴'의 작곡가 김드리(35)다.
원작은 열여섯 살 소년 '블라디미르'가 공작 부인의 스물한살 딸 '지나이다'에 사로잡힌 뒤 앓는 사랑의 열병 이야기다. 그녀에게 따로 애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흥분한 뒤 그를 저주하는데, 이내 지나이다의 연인은 자신의 아버지로 밝혀진다.
뮤지컬은 작년 리딩 공연 당시 '감정이 과잉되지 않은 드라마와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된 음악들로 원작의 감동을 구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정 작가는 "원작에서 감정의 요동치는 부분들이 좋았다"면서 "사랑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접근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뮤지컬에서 소년은 이반이라는 이름을 가진다. 원작 작가 투르게네프의 이름이다. 투르게네프가 작중 소년 블라디미르는 '나의 과거'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지나이다는 지나로 이름을 축약했다. 원작에서 아버지는 방탕한 장교 이미지가 강한데, 뮤지컬에서는 지적인 작가 '빅토르'로 탈바꿈했다. 감수성이 충만한 자유로운 인물이다.
정 작가는 "이반의 순수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원작에서는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아버지의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면서 "원작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선택과 집중할 수 있는 부분에 신경을 썼다"고 전했다.
소설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을 뒤집었다. 블라디미르가 단순히 불쌍하고, 그의 부친은 단순히 나쁜 사람인가라는 의문이 든 것이다. 정 작가는 "소설에 나타나지 않은 아버지의 심리에 대해 고민했다"고 귀띔했다.
무엇보다 김 작곡가는 자신이 만든 멜로디에 정 작가의 시적인 노랫말이 붙여져 좋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가사가 좋아서 프린트를 한 뒤 시집처럼 읽고 다녀요. 그런 점이 뮤지컬에서 고전미를 살리는 장점이 되죠."
인간 본연의 감성인 사랑과 예술적인 통찰에 톺아보는 '붉은 정원'은 사실 대학로에서 유행하는 상업적인 뮤지컬 흐름과 궤를 달리한다. 매력적인 남성주인공, 자극적인 소재와는 거리가 멀다.
두 사람이 석사 격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창작협동과정에서 만나 개발한 작품은 상업적인 고려 없이 본인들의 성향대로 만든 것이었다.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 최우수 선정뮤지컬로 뽑히면서 정식으로 대학로에 선보이게 됐다.
정 작가는 어릴 때 '페임'을 본 뒤 뮤지컬에 꿈을 품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뮤지컬 영화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다. 학부에서 작곡을 전공한 김 작곡가는 대학원에서 오페라를 공부하고 싶었으나, '벽을 뚫는 남자' 등을 보고 뮤지컬로 방향을 틀었다.
두 여성은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지원이 새삼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정 작가는 "'붉은정원'은 욕심 없이 '본 공연'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만든 작품"이라면서 "상업성이 보장돼야 공연할 수 있는 환경에서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김 작곡가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더 펼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아직 신인이라 고민이 많고 힘든 점도 있죠. 그런데 하고 싶은 것을 후회 없이 펼쳐도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본 지금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게 됐어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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