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 영장 기각…경찰 '갑질' 수사동력 상실?

기사등록 2018/06/05 00:47:20 최종수정 2018/06/05 08:40:42

법원, 사실관계 및 법리 다툼 지적…경찰엔 '직격탄'

영장신청 명분 '증거인멸' 우려도 법원은 인정 안해

경찰, 기각사유 검토해 영장 재신청 여부 결정 방침

일각에선 구속영장 기각돼 불구속 송치 '무게' 관측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경찰은 이 전 이사장이 지난 2011년 8월부터 지난 3월까지 11명의 피해자에게 24차례 폭언·폭행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 서울중앙지검은 이를 받아들여 지난달 31일 이 전 이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018.06.04.   20hwan@newsis.com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갑질' 사건으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의 판단에 대한 해석이 분분할 수도 있지만 경찰 수사의 동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자칫 지난 달 조현민 전 전무에 대한 구속영장이 반려된 것처럼 경찰의 수사력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수도 있다.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이 이사장에 대해 단지 도주 뿐만 아니라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 것은 물론 혐의사실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4일 밤 늦게 기각했다.

 이는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불구속 수사쪽에 무게를 둔 것으로 최소한 수사단계에서 만큼은 법원이 수사기관 대신 피의자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범죄사실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점과 경찰이 구속영장을 예상보다 빠른 시점에 신청하면서 명분으로 내세운 증거인멸 우려에 대해서도 법원이 경찰과는 다른 판단을 한 것은 단지 법리해석에 대한 이견으로만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추후 경찰의 수사력과 연계해 논란의 소지가 될 수도 있고, 자칫 경찰이 재벌 총수일가를 잡아들이는 데에만 급급해 성급하게 수사한 게 아니었냐는 잡음을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다.

 이 이사장에 대한 경찰의 사법처리 의지는 구속영장만 놓고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수년에 걸쳐 폭언 또는 폭행이 여러차례 발생했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상습폭행, 특수폭행, 상해, 업무방해, 모욕,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폭행 등 무려 7가지 혐의가 한 사람에게 적용됐다. 이 이사장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그물망'을 여러 개 펼친 셈이다.

 경찰이 구속영장에 적시한 범죄사실만 해도 24개에 달한다. 정관계 뇌물이나 재벌 비자금 사건에서도 이 정도의 범죄사실을 캐는 건 흔치 않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평창동 주거지에서 출입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비원에게 위험한 물건인 전지가위를 던지고, 구기동 도로에서 차량에 물건을 싣지 않았다는 이유로 운전기사의 다리를 발로 차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가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14년 인천 하얏트 호텔 공사현장에서 조경 설계업자에게 폭행을 가하고 공사자재를 발로 차 업무를 방해한 혐의도 있다.

이런 '갑질'로 지난 2011년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11명이 피해를 입었고, 경찰은 사안의 중대성과 증거인멸을 우려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반면 법원은 범죄혐의 일부의 사실관계 및 법리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이 이사장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즉, 동영상이나 녹음파일 등 객관적으로 명백한 증거가 남아 있는 범행에 대해서만 인정할 뿐, 증거나 주변 목격자 등이 부족한 범행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 '그런 사실이 없다' 등의 부인하는 태도로 일관했던 변호인의 '전략'이 통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경찰로서는 수년 전 사건임을 감안하더라도 객관적인 물적 증거를 수집하는데 소홀했거나 구체적인 정황 등 간접증거나 목격자 등을 좀 더 확보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았었냐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사실관계 및 법리 측면에서 경찰의 입증이 부족하다고 법원이 판단한 만큼 자칫 이대로 사건을 송치해 재판에 넘기더라도 일부 혐의사실은 무죄가 나올 공산도 크다.

 경찰은 조현민 전 전무에 대한 구속영장이 검찰에서 반려될 때 결정적 사유였던 피의자 합의를 막기 위해 이 이사장에 대한 영장을 속전속결로 처리했지만, 이마저도 법원을 설득하지 못했다.

 오히려 법원은 "피해자들과 합의한 시점 및 경위, 내용 등에 비추어 피의자가 합의를 통해 범죄사실에 관한 증거인멸을 시도하였다고 볼 수 없다"며 "그 밖에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볼 만한 사정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의 심사 결과를 통보받은 경찰은 향후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한 후 검찰과 협의해 구속영장 재신청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경찰 주변에서는 보강 수사과정에서 결정적인 증거자료나 추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한 영장 재신청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경찰 수뇌부의 기류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영장이)기각되면 검찰과 협의해서 보강할 것은 보강하겠다"면서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하자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라면 따라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결국 경찰은 지난해부터 이어오고 있는 한진 총수 일가에 대한 각종 수사에서 구속영장이 3차례 모두 검찰이나 법원에서 반려 또는 기각되면서 한진 일가와의 '악연'을 떨쳐낼 수 없게 됐다. 갑질 행위로는 '재벌가 사모님'에 대한 구속영장은 거의 전례가 없는 초유의 일이라 높은 관심을 모았던 만큼, 일각에서는 이 이사장이 구속 위기를 넘겼지만 국민 정서상으로는 유죄를 선고받은 것과 다름없어 결과적으로 득 될 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newki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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