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페이지갤러리에서 10년만에 국내 개인전
유럽서 25년간 깨고 비운 '숨쉬는 돌의 시간'
천장에 매단 4~5m 거대 조각 3점 신작 눈길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500만원만 빌려주세요"
자존심 때문에, 가족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말. 갤러리를 찾아가 손을 벌렸다.
"300만원밖에 없는데…" 박여숙화랑 사장이 건네준 그 돈은 '눈물의 씨앗'이 됐다. 1997년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싣고간 '박은선'은 질긴 목숨과 가난의 멍에, 어쩔수 없는 조각가의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전쟁 같은 노동'으로 바둥쳤다. "지난 25년 세월동안 작업장에 서 있는게 내 모습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위기감과 긴장감이 힘"이었다. "그걸 놓치면 제 삶이 무너질 것 같았다" 인맥도 없고, 금수저도 아니었다. 피눈물을 쏟아내며 '절망의 벽'을 깨트렸다.
"매일 낭떠러지 끝에 서있어 죽을 것 같은 위기감을 거치면서 '파괴하고 해체하고 조립하는' 이런 작업이 완성됐죠"
이젠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한국인 박은선이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억의 스폰을 받아 유럽 각국 대도시에 작품을 설치한 것은 자랑이 아니라 자부심입니다."
‘이탈리아가 사랑하는 조각가’로 불리는 조각가 박은선(53)이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대리석으로 무장한 조각과 함께 온 그가 국내에서 10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서울 성수동 서울숲갤러리아포레 더페이지갤러리에서 16일부터 20여점을 선보인다. 총 600여평 층고 5.4m 6개의 공간은 리뉴얼 한 더페이지갤러리의 재개관전으로 마치 '박은선 조각'을 위한 맞춤형 공간처럼 보인다. 미술관같은 상업갤러리의 변신 덕분에 '박은선 대형 조각'전이 열리게 됐다.
15일 더페이지갤러리에서 만난 조각가 박은선은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작업"이라며 "머릿속에 항상 꿈만 꾸던 작품, 좋은 전시장을 만나서 이런 전시를 한 것 같다"고 뿌듯함을 보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난다. 거대한 대리석 기둥 3점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4~5m 길이로 늘어진, 중력을 거스르는 설치를 통해 보는 순간 압도당하지만 슬쩍 겁도 난다. '혹시 떨어지지 않을까,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지만 "이 정도 무게는 무게도 아니다"라고 했다. "유럽에서 작품설치할때는 30톤 넘는 작업도 있다"는 그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익숙해져 있다"고 했다. "이탈리안인드도 내 작업에 흥미있어 한다"면서 그 이유는 "노동적인 면과 금전적인 모든 걸 해내서 이 자리에 와 있다는 것, 그걸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수학자처럼 공간과 무게 중력 계산을 철저히 한다. 천정에 특수 장치를 한 뒤 매단 조각이지만 긴장감이 있다. 뒤틀린듯 빈 균열과 흰 대리석 때문일까. 육중함보다 가볍게 떠있는 느낌이다.
넓은 공간에 여백과 함께하는 작품은 관람객을 위한 것이다.
"대리석 조각이다보니 서양적이라고 하는데, 완성된 작업에서 오는 느낌은 동양적이다. 난 한국사람이니까. 매달린 기둥 하나 때문에 주변에 놓여있는게 없어야 한다. 동양화에서 난(蘭)을 하나하나 치면서 달라지는 여백처럼, 상상력을 동원시키는 공간이기때문이다. 관객 여러분들이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무한 기둥' 작품은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이는 신작이다. 평생 긴장감과 위기감 속에 살아온 작가의 흔적이 고스란히 박혀있다. 그는 "내 작품들은 이탈리아에서 25년간 살아온 삶 자체"라고 했다.
작가는 경희대 미술대학을 졸업 후 1993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카라라 예술국립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이후 한국에 들어왔지만 전업작가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유학까지 갔다왔는데 작품은 팔리지 않고, 결혼한 부인이 생계를 이었다. 남자로서 무능함,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패배감이 자살 직전까지 내몰았다. "마지막으로 살아보자"며 '포장마차나 오뎅장사라도 해볼까'라며 기웃거렸다. 부인 대신 아이들을 돌보며 보내는 하루, 주변에선 "어느 회사 다니다 잘렸냐"며 수군거렸다. IMF 시절이었다.
"이대론 안되겠다. 작업해야겠다"고 이탈리아로 향한지 25년째, '작업장 귀신'처럼 살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는 조각가에겐 천국이다. 작가는 "재료를 찾기 위해 온 곳인데, 실제로 재료뿐만 아니라 주변에 연장과 공구도 30분 거리안에 다 있다"며 만족한다. 피에트라산타는 거대한 대리석 산지와 가까워 세계적 조각가가 몰려든다. 미켈란젤로, 도나텔리, 헨리 무어, 페르난도 보테로 등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작업 터로 삼은 곳이다.
평생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살아온 그가 이탈리아에서 반짝인건 10년이 지나면서다.
2007년 7~8월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시 초청으로 ‘베르실리아나 축제의 대규모 야외 조각전에 초대되면서다. 단 한 명의 조각가를 초청하는 행사로, 이전에 헨리무어, 페르난도 보테로 등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참여했다. 이후 현재까지 이 축제에 유일하게 초대된 한국 작가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어느 도시에서나 어느 빌딩앞에 새로 들어서도 '항상 있었던 것 같다'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2015년부터 유럽에서 러브콜이 이어졌다.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피사 국제공항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개인전을 2년간 열었고,포르테바르드요새 박물관, 빌라기를 란다 시립미술관 등에 초대되며 이탈리아에서 ‘박은선’을 각인시켰다. 또 3년마다 여는 스위스 바드라가르츠트리엔날레에 초청돼 세계적 조각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유럽 각지에서 50회의 개인전 및 200여회 이상의 그룹전에 참여한 작가는 한국미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업적을 인정받아 2015년 국민훈장을 외교부로부터 수여받았다.
세계적인 조각 평론가 루치아노 카라멜은 그의 작품에 대해 "외형의 선택에서 이탈리아 예술의 영향이, 넓은 의미로는 동양적, 명확하게는 한국적인 측면이 보인다"며 "추상조각임에도 동양적 미를 느낄 수 있다"고 평했다.
동서양이 합체된 작품. 그는 애초부터 "내 정체성을 찾는 작업을 안했다"고 했다. "내가 만들고 있는 자체가 동양적"이라는 그는 "작품을 제작할 때 여백을 고려하는데 현지에서 그러한 여백이나 기둥에서 보여지는 선 등을 동양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했다.
돌의 결을 따라 의도적인 균열을 만들고 틈을 내는게 이색적이다. 기하학적, 추상적 형상 가운데 부드러운 곡선미를 강조한 그의 작품은 전통조각의 관념을 깼다. 색이 다른 두개의 대리석 판을 켜켜이 쌓아 올리면서 원형, 사각형, 원반과 같은 조각의 외형을 마름질하고 그 과정의 시간들을 겹쳐간다.
작품은 제의에 가까운 수행적 태도를 통해 나온다. 거칠게 파괴된 돌과 정교하게 표면처리된 돌 사이의 긴장은 자연스러움과 인공적인 것, 과학적인 엄격함이 작품 안에 공존하면서 완벽한 균형과 질서 속에 에너지를 상승시킨다.
동양과 서양, 고전과 모던, 균형과 불균형, 통제와 자율성이 대립된 작업은 순전히 '망치'에서 나왔다.
"미켈란젤로 시절부터 조각은 대리석 한 덩어리에서 떼 나가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만들던 조각작품을 망치로 깨버렸다. 깨고 나니 느낌이 좋더라. 깨고 부수고 짜맞추면서, 아~ 나와 너무 닮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작업은 깨는 것으로 시작한다. 처음부터 깨고 숨통을 열어주며 붙여나간다.
"왜냐고요? 돌은 생명이 없어요. 생명이 없는 자연석에 생명을 넣고 싶어 깨는 겁니다."
이번 전시는 '쉼 쉬는 돌의 시간'을 타이틀로 박은선이 유럽에서 일궜던 그의 작업을 총 망라해 보여준다.
다섯 개의 길죽한 조각품이 모여 있는 것과 달리 검은 조각을 따로 빼놓은 전시장 안에서 그가 말했다.
"저는 이탈리아에서 스스로 왕따로 자청하면서 살아왔어요. 따로 떨어져 있는 강렬한 검은색은 바로 제 모습입니다. 인종차별하면 넘어가지 않고 덤볐고, 작업하면서 힘들면 부수고 깨고 성격을 그대로 표출했죠. 인생 반을 넘어가면서 말로 상처줬던 주변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어요."
깨지고 비어 날씬하게 세워진 작품들은 스스로 근력있게 탄력성을 보인다. 신전 기둥처럼 또는 외계의 나선처럼 무한 회전해 위로 아래로 파고들 듯 하다. 그는 "작품에서 살아 있는 숨소리, 비명소리를 듣는다"면서, "내 작품에는 100%의 내 삶이 스며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수십 톤의 대형 돌 조각을 보면 모두 무모하다고 입을 모은다. 혼자하면 6개월~8개월. 최근에는 로봇과 3D를 이용해 마름질하면 한 달에서 석 달 정도 걸려 완성되는 작품이다.
인생에 한 방은 없다. 반복의 힘은 무섭다. "매일 같이 작업하다보니 쉬워요. 하루도 끈을 놓지 않고 작업하다보니 내 것이 됐고, 하루 일과가 됐죠."
비틀어진 사각형 조각이 뽀족한 모서리로 서 있는 작품앞에서 그는 "무게 중심이 틀어지면 위험 부담이 많다"며 "작가로서 여전히 25년 전 모습과 똑같이 살고 있다. 제 자리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300만원 들고 이탈리아에 갔을때, 중고 자전거 한대만 있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을 가지고,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그때가 좋았다. 지금은 찾는 사람도, 연락도 많다. 작업만 하고 싶을 때, 절실할때, 그때가 생각난다"고 했다.
"아, 돈 갚았냐고요? 그럼요~ 그 다음해 바젤아트페어에서 작품이 솔드아웃됐거든요. 하하하."
서양미술의 핵심, 건축과 조각이 태어난 본토로 들어가 조각가로 희석됐지만, 25년간 정체성을 지켜왔다. 서양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 긴장감과 균형감이 박은선 몸에 체화되면서 해체와 접합의 한 덩어리로 '박은선 조각'을 재탄생시켰다. 25년간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그의 조각혼도 중력을 거스른 '무한기둥' 처럼 '공중부양'을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작가로 인정받기까지 많은 시간, 오래 걸렸죠. 그래서 지금의 저는, 건방지다고 할 지 모르지만 항상 자신감 있습니다."
그동안 '가벼운 조각' 일색이었던 국내 조각 시장에 '박은선 숨쉬는 조각'이 묵직한 균열을 가하고 있다. ‘박은선 조각이, 은근하게 유럽에서, 선방했다는 것을’. 보고 만지면 느껴진다. 전시는 6월30일까지.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