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정현 말고 조각가 정현...금호미술관 개인전

기사등록 2018/04/10 18:27:04 최종수정 2018/04/11 01:13:39

파리 팔레루아얄 정원서 선보인 침목 전시

설치작업·대형 콜타르 드로잉등 30점 선봬


【서울=뉴시스】 조각가 정 현 교수가 금호미술관 전관에서 설치 작업 4점과 9점의 신작등 미공개작 22점을 전시한다. 폐한옥으로부터 남겨진 목재의 잔해와 경남 지역의 서원에서 나온 낡고 거대한 대들보를 재료로 한 신작을 선보인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테니스계 태풍' 정현이 있다면 미술계에는 조각가 정현(62·홍익대 교수)이 있다. 환갑이 지났지만 '조각계 태풍'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6년 한국-프랑스 수교 130돌을 맞아 파리 팔레루아얄 정원에서 펼친 개인전으로 국내외에서 더욱 주목받았다. 당시 검은 '침목'을 소재로 만든 '서 있는 사람'(50점)은 팍팍한 현대사회를 살아내고 있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장엄하게 전달해 파리에서도 화제가 됐다.

 조각을 통해 물질에 응축된 시간과 힘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을 성찰케 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다.

그 검은 침목의 원천을 볼수 있는 전시가 서울 삼청로 금호미술관에서 열린다. 10일 개막한 정현 개인전에는 설치 작업 4점, 9점의 신작등 30여점을 전시했다.  2016년 파리 전시 침목 조각들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서울=뉴시스】 정현, 무제 Untitled, 2017, 나무, 212x730x40cm


  전시의 서두가 되는 1층 전시장에는 거대한 대들보가 놓였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며 육중한 천장을 떠받쳐 온 이 대들보는 경남 지역의 서원에서 나온 것으로, 좀먹고 낡아 더 이상 그 하중을 다 지지할 수 없게 된 나무다.

 흰개미가 좀먹은 구멍들로 가득한 대들보는 7m가 넘는 길이로 그것이 지탱했을 공간이 얼마나 거대했을지 짐작케한다. 또한 낡고 바랜 단청은 그 색이 찬란하게 선명했을 시절과 바래지기까지의 긴 세월을 함께 돌아보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주가 되는 재료는 100여년딘 폐한옥이 철거되며 그 잔해로 남겨진 나무들이다. 인천 덕은동에 위치했던 작가의 옛집이 주택개발예정지구에 포함되면서 철거되었고, 그때 이 목재들이 나왔다.질곡의 시간과 고난의 기억들을 응축한 듯 부서지고 찢기어진 기묘하게 날 선 나무들은 형태와 여백 가운데에서 날카로운 에너지의 돌출을 보인다
【서울=뉴시스】 정현, 무제 Untitled, 2018, 나무에 먹물 착색, 230x1100x75cm

  대형 콜타르 드로잉 작품도 조각같다. 구체적인 형상이 나타나기 보다는 산업적인 재료의 물성을 살리며 그 본질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함축적인 의미와 상징들이 담겼다.

 콜타르는 석탄 찌꺼기의 일종으로 추출과 처리 공정을 거치고 남는 물질이다. 정현은 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콜타르를 재료로 한 드로잉 작업을 해 왔다. 보통의 붓을 사용하지 않고 각종 주변 사물들을 붓 대신으로 활용해 그리는 작업 방식은 시련을 거친 하찮은 것들로부터 아름다움을 찾아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철학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5-6m 길이의 대형 드로잉으로 응축된 감정과 상승하는 에너지를 더욱 강렬하게 분출한다.

【서울=뉴시스】 정현 개인전 금호미술관 전시 전경
  정현은 철길의 침목(枕木), 석탄, 아스팔트 콘크리트, 잡석 등 산업 폐기물과 현대 사회에서 버려진 물질들을 재료로 지속적으로 ‘인간’을 이야기해 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침목을 중요한 재료로 삼아왔다. 인간의 형상을 대략적이고 생략된 기본 형태로만 표현하는데, 대신 재료 자체에 내재한 강한 물질감과 상징적 의미를 부각시킨다.

  2001년 금호미술관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였던 '침목' 조각을 기점으로 작업은 크게 변모했다. 철도의 폐침목으로 서 있는 사람의 형상을 드러내면서다. 오랜 시간동안 철도의 무게를 지탱하며 거친 비바람을 맞은 이 재료를 작가는 전기톱과 도끼로 자르고 찍어내어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침목의 팍팍함과 나무결은 현대 사회를 이겨내면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을 나타내며 인체의 모습은 거의 사라진 채 나무 원재료의 질긴 추상성만 그대로 작품에 드러난다.

  그는 왜 '폐침목'에 빠진 것일까.

  조각가로서 인고의 시간을 지나온 자신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 유년시절 기억이 지배한다. 1956년 인천에서 태어난 그의 놀이터는 철길 이었다. "기차가 달려올 때 침목 아래 깔린 자갈들이 무섭게 진동하는 걸 보며 출렁거렸던 그 느낌과 기억이 '침목'으로 이끌었다. "침목은 태어나서 본 것 중에서 가장 육중한 덩어리였다."
 
【서울=뉴시스】 정현, 무제 Untitled, 2015, 침목, 300x75x25cm (9EA), 금호미술관 전시 전경

   금호미술관 지하 1층에서 3층까지 채워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렸던 이번 전시는 '침목'을 불러내면서 완성됐다.

 작가는 형식주의에 머물지도, 현실에의 개입으로 치우치지도 않는 지점에서 인간의 지나온 시간을 바라본다.

 소멸을 앞둔 물질에서 힘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또 다른 형태로 그것을 소생하며 해방시키는게 정현 작업의 핵심이다.

 용도를 다한 재료의 물성이 드러내는 장엄함과 숭고한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성찰의 사유의 여백에 머물게 한다. 오는 5월 13일 작가 정현과 미술평론가 심상용의 대담이 금호미술관 3층 세미나실에서 열린다. 전시는 5월 22일까지.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