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개 기관 전달됐지만 문제제기 없어"
김기춘 "적법 절차 지시" 항변…불기소
【서울=뉴시스】오제일 기자 =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침몰 참사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대통령훈령을 인턴 직원에게 수정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볼펜으로 수정된 지침은 65개 산하 기관에 전달됐으며, 기관들은 어떠한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다.
28일 세월호 보고 시간 조작 사건 등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청와대는 비난 여론을 회피할 목적으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고치기로 했다. 이 과정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도했다.
김 전 실장 등은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국회 등이 해당 지침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지만, 비공개 지침이라며 버텼다. 동시에 내부 회의에서는 수정 작업이 더디게 진행된다며 실무자들을 질책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14년 7월31일 '국가안보실이 재난 상황의 전략 커뮤니케이션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는 규정은 '국가안보실은 국가위기 상황에서만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취지로 변경됐다. 인턴이 볼펜을 활용해 두 줄을 긋고 수정하는 식으로 작업이 서둘러 진행됐다.
수정 된 지침은 방위사업청 등 65개 부처 및 기관에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수정 지시' 공문으로 전달됐다. 이들 부처 및 기관 모두가 절차 등에 대해 문제룰 제기하지 않았다는 게 검찰 조사 결과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가 언론 등을 통해 비판 여론이 제기될 것을 우려해 지침을 불법적으로 수정한 것으로 판단했다. 대통령훈령인 지침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관계기관장 의견 조회 ▲훈령안 심사요청 ▲대통령 재가 등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이를 따를 경우 책임 회피 목적이라는 비판을 예상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과정에 관여한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을 공용서류손상죄 등으로 불구속기소했다. 탄핵 심판 과정에서 허위 증언한 윤전추 전 행정관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이와 함께 김규현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신인호 전 위기관리센터장이 범행에 가담한 사실을 확인하고 해외 도피 중인 김 전 차장은 지명수배 및 기소중지, 현역 군인인 신 전 센터장은 군검찰로 이송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기춘 전 실장이 의견을 냈지만, 국가안보실 소관 문제인 만큼 최종 책임은 김관진 전 안보실장에게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안보실장은 일련의 과정을 보고 받고 승인한 사실관계 자체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김 전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본인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고치라고 지시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검찰은 김 전 실장에게는 해당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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