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자의 당일 '렉싱턴 호텔' 위치정보 공개가 결정타
성추행 보도 기자 고소 취하됐지만 경찰 조사는 계속
폭로자 측 "무고죄 적용은 어려워…법적 조치 검토중"
【서울=뉴시스】채윤태 기자 = 성추행 의혹을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역공까지 취하던 정봉주 전 의원이 결국 무릎을 꿇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성추행 피해 폭로자가 사건 당일 현장에 있었다는 위치정보를 공개한 것이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정 전 의원은 28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모든 공적 활동을 접고 자숙하고 또 자숙하면서 자연인 정봉주로 돌아겠다"고 밝혔다. 그는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10년의 통한의 겨울을 뚫고 찾아온 짧은 봄날이었지만 믿고 지지해주신 분들,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의 첫 특별사면 후 더불어민주당 복당 신청, 서울시장 출마 선언까지 정 전 의원의 정계 복귀는 순탄한 듯 했다.
그러나 서울시장 출마 공식 기자회견이 예정됐던 지난 7일 안젤라(가명)씨가 프레시안을 통해 "2011년 12월23일 정 전 의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결국 정 전 의원의 출마 선언은 무기한 연기됐고 민주당은 그의 복당을 불허했다.
정 전 의원은 지난 18일 무소속으로 서울시장 출마를 강행했다. 정 전 의원은 이 자리에서 "프레시안 '음모'는 별건의 문제라 당원 자격 회복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를 비난했다. 정 전 의원은 안젤라씨를 향해서도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겨냥했다.
정 전 의원은 동시에 사건 당일(2011년 12월23일)의 알리바이를 공개하는 등 적극적인 반박에 나섰다. 지난 13일 검찰에 성추행 의혹을 보도한 프레시안 기자 2명을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소했다.
정 전 의원은 사건 당일 찍은 사진 780장을 수사기관에 증거로 제출했다. 780장의 사진에는 성추행이 벌어진 장소와 시간대로 지목된 당일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이 아닌 다른 곳에 정 전 의원이 있었다는 증거도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2일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780장의 사진 중 일부를 공개하며 정 전 의원이 당일 오후 1~5시 사건 장소로 지목된 렉싱턴 호텔에 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렉싱턴 호텔은 안젤라씨가 지난 2011년 12월23일 정 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장소다.
가장 큰 결정타는 폭로자인 안젤라씨의 입에서 나왔다. 지난 27일 안젤라씨는 성추행 폭로 이후 20일만에 공식석상에 나타나 본인이 사건 당일 오후 5시께 서울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 있었다는 증거를 공개했다. 정 전 의원이 공개한 사건 당일 사진 780장의 증거능력이 사라지게 된 셈이다.
안젤라씨는 기자회견에서 "2011년 12월23일의 기록을 찾던 중 최근 위치 기반 모바일 체크인 서비스 '포스퀘어'를 통해 하나의 증거를 찾았다"며 "당시 제가 방문한 렉싱턴 호텔 1층 카페 겸 레스토랑 인 '뉴욕뉴욕' 룸 안에서 찍은 셀카 사진과 함께 추가 체크인을 한 기록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안젤라씨는 2011년 12월23일 오후 5시5분께 포스퀘어를 통해 렉싱턴 호텔 1층 카페 겸 레스토랑 '뉴욕뉴욕' 위치를 지정하고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문구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후 5시37분께에도 여전히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문구와 '뉴욕뉴욕' 내부에서 찍은 사진을 포스퀘어에 남겼다고 밝혔다.
안젤라씨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사건 당일 렉싱턴 호텔에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자 정 전 의원과 변호인들은 언론 접촉을 피하고 침묵했다.
정 전 의원은 결국 28일 보도자료를 내고 "제 스스로 2011년 12월23일 오후 6시43분께 렉싱턴 호텔에서 결제한 내역을 찾았다"며 "2011년 12월23일 제가 렉싱턴 호텔에 갔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됐다"며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보도한 기자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경찰은 고소가 취하됐지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반의사불벌죄가 아니기 때문에 조사 일정을 계획대로 진행한 뒤 사건 종결 여부를 판단한다는 방침이다.
정 전 의원은 프레시안 협동조합 측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소한 것과 관련해서도 피고소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계속 받게 될 예정이다.
안젤라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하희봉 변호사는 "안젤라씨가 정 전 의원에게 직접 고소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무고죄를 적용하기는 어렵다. 다만 필요한 법적 조치를 모두 검토 중"이라며 "현재 예정돼 있는 경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chaideseul@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