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사과 이후…연극계, '위드유' 시작·'미투' 더 번져

기사등록 2018/02/20 09:09:26 최종수정 2018/02/20 09:20:48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편 한국극작가협회는 이 전 감독을 회원에서 제명한다고 지난 17일 입장을 냈다. 이와 함께 한국여성연극협회가 성명을 내는 등 각종 연극 단체에서도 이 전 감독 사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8.02.19.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지난달 28일 '제60회 그래미 어워드'. 당시 케샤는 후보로 지명된 곡인 '프레잉(Praying)'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이 곡은 자신의 전 프로듀서인 닥터 루크로부터 성적·정신적인 학대를 받은 뒤 5년만에 발매한 정규 3집 '레인보(Rainbow)'의 수록곡이었다.

해당 곡을 함께 부른 신디 로퍼, 카밀라 카베요, 줄리아 마이클스, 안드라 데이, 비비 렉사 등은 케샤를 포옹하며 달래줬다. 이들은 모두 남성의 폭력적인 것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흰색 옷을 입고 나왔다. 

미국 가수 자넬 모네는 이날 케샤 무대를 소개하며 "우리를 침묵시키려는 사람들에게 그런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케샤는 공연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밤 저와 함께 무대에 선 여성분들, 그리고 이 여정을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썼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과 관련 성추문 폭로 이후 연극계 역시 연대를 굳건히 하고 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폭탄이 돼 "그 당시 그(이윤택)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이었던 권력의 균열을 낸 이후 공감과 연대 등을 뜻하는 '위드유'(#With You)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연극계, 특히 연희단거리패 같이 연출가가 극단의 전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전 감독이 주로 성추행을 한 대상으로 알려진 젊은 여단원들은 감히 폭로할 생각조차 갖지 못했다. 하지만 미투·위드유 운동을 발판 삼아 폭로는 물론 공감과 위로의 영역까지 나누고 있다.
 
◇분노와 연대 왜?

이 전 감독의 성추행·성폭행 의혹은 물꼬가 트이자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전날 그가 성추행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는 사과한다고 했으나 성폭행의 혐의에 대해서는 일체 부인했기 때문이다.

【서울=뉴시스】케샤(중앙), 왼쪽부터 비비 렉사, 신디 로퍼, 카밀라 카베요, 안드라 데이, 줄리아 마이클스. 2018.01.29. (사진 = AP 제공) photo@newsis.com
이후 배우 이승비, 김지현 등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추가 폭로가 이어졌고 그녀들을 응원하는 연극인들 사이에서는 견고한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 전 감독의 성추행 사실을 가장 먼저 폭로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정말 욕밖에 안 나온다. 뻔뻔한 태도에 치가 떨린다. 성관계였다고 헛소리하는 그 입에 똥물을 부어주고 싶다"고 격노했다.

김지현은 SNS에 "이윤택 선생님의 기자회견장에 갔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모든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 것이라고. 그래서 제가 받은 상처도 치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에서 갔던 것 같았다. 그러나 선생님께선 전혀 변함이 없었다"고 썼다.

피해자들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까닭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트사이트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는 각종 해시태그(#)를 단 연대의 메시지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최근에는 오프라인에서도 연대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 10시 대학로 극단 고래의 연습실에서는 관련 모임이 열리고 있다.

해당 모임에 참여 중인 연출가인 설유진 극단 907 대표는 "연극계에는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을 겪은 피해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믿을 수 있는 폭로를 위한 위로를 위한 창구가  없다"고 지적했다.

설 연출에 따르면 현재 피해자들이 법적절차를 밟고자 하거나 주변의 지지가 필요해도 혼자 삭히거나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이 무작정 덤볐다가 증거나 증인이 있기 힘든 일이라 명예훼손 같은 명목으로 역으로 당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뉴시스】 미투 행진. 2018.02.06. (사진 = AP 제공) photo@newsis.com
설 연출은 "그래서 창구를 마련하려는 거다. 당장 해결이 되지는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모여서 함께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모습과 실제적인 준비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미투를 독려하는데 그치지 않고 연극계에 만연한 폐쇄적이고 고루한 권력구조에서 비롯하는 문제들 특히 지위와 힘을 이용한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서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성폭력인가부터 되짚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뒤늦은 반성…미투 운동은 확산
 
이와 함께 한편에서는 이 전 감독에 대한 추문이 일찌감치 연극계에서 암암리에 퍼졌음에도 이를 방관한 연극계의 태도에 질책을 가하고 있다. "곪을 대로 곪은 것이 터진 것"이라면서 일련의 성범죄 사태에 대해 연극인들 스스로 자정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도 제기하고 있다.

이 전 감독을 제명처리한 서울연극협회는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권력의 그늘에서 희생되는 연극인이 없도록 윤리강령을 제정하고 모든 회원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면서 "또한 본 사건으로 촉발된 연극계 치부에 대해 외면하지 않고 계속 주시하며, 추후 범죄사실이 드러나는 대로 제명 내지 다시는 연극계에 발을 담을 수 없도록 관련 협회들과 공조, 영구히 퇴출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한편 한국극작가협회는 이 전 감독을 회원에서 제명한다고 지난 17일 입장을 냈다. 이와 함께 한국여성연극협회가 성명을 내는 등 각종 연극 단체에서도 이 전 감독 사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8.02.19.  myjs@newsis.com
미투 운동에 동참 중인 연극 연출가 김재엽은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결과적인 것만으로 평가받는 연극계의 관행 속에서 불합리한 과정과 반인권적인 폭력을 감내해온 수많은 연극인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것이 인정투쟁에 목말라하는 우리의 모습이었다"면서 "인정투쟁에서 살아남을 연극 한 편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연극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도 무시해 온 우리의 연극이 과연 정당한 연극이었는가 거듭 자문하게 된다"고 썼다.

이번에 미투 운동을 지속시켜 성폭력의 어두운 뿌리를 완전히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는 이유다. 미투 운동은 연극계를 넘어 공연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이 전 감독이 세운 밀양연극촌 촌장이자 인간문화재인 하 모씨 역시 이 전 감독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여있다. 그는 이 전 감독의 기자회견 당일 오후 '평창 문화올림픽'의 하나로 열리는 공연에 참여 예정이었으나 "부득이한 사정"을 들어 취소했다.
 
이와 함께 유명 뮤지컬 음악감독 역시 인터넷에서 성추행 의혹을 받은 뒤 자신의 SNS를 통해 바로 사과하기도 했다. 또 다른 연극계 거장 역시 SNS 등에서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으며, 배우로도 활동하는 유명 공연 제작사 대표 역시 성추행 가해자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설 연출은 "연희단거리패 문제는 연극계 어두운 면의 축소판"이라면서 "작업 중 또는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추행과 잘못된 언어습관 등이 비일비재하고 술버릇이라고 원래 저런 사람이라고 작업이 먼저라며 너무도 무뎌져버린 감각들을 예민하게 깨우는, 모두가 공유하고 고쳐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행하는 모임은 계속적으로 발생할 것들을 지속적으로 고쳐나가기 위해 길게 보고 유지되길 바라는 모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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