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폭시 레진이 품은 '21세기 단색화'...김현식 개인전

기사등록 2018/02/07 10:55:07 최종수정 2018/02/07 11:21:06
【서울=뉴시스】 Percy the Violet, 2016, 에폭시 레진에 아크릴릭, 나무 프레임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82x82x6cm
해외 전시후 국내에서 8년만의 개인전
'머리카락' 이후 학고재에서 신작 공개

【서울=뉴시스】 박현주 기자 = 이 작품은 직접 봐야 진가가 빛난다. 화면 이미지보다 실물이 더 신기하고 아름답다.

 수많은 선긋기로 완성한 색색의 작품에 대해 해외평론가들은 "동양적 신비로움"을 언급했고, '미니멀 아트'로 다가섰다가 독특한 기법에 호기심과 감동을 표한다.

 매끈하고 투명하게 반짝이는 작품, 그림을 보면 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말끔하게 칠한 회화에 두꺼운 투명 코팅 처리를 해 놓은 것 같은 작품의 비밀은 '에폭시 레진'(epoxy resin)덕분이다. 공업용 투명 접착제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유리액자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도 있다.

 에폭시 레진 위에 빼곡히 색선을 긋는 반복적 행위로 물감과 레진이 만나 작품은 회화를 넘어 착시를 일으키는 반입체로까지 보인다.

 5년전부터 런던, 브뤼셀, 아트마이애미, 아트 뉴욕, 아트 파리스등 해외에서 입소문을 탄 작품은 2016년 상하이 학고재갤러리에 개인전을 연 이후 '김현식'의 이름을 제대로 알렸다. 국내에서 '머리카락' 작품으로 유명세를 탔던 작가의 위대한 변신이었다.
 
【서울=뉴시스】 학고재갤러리에서 7일부터 김현식 개인전이 3월 4일까지 열린다.

  서울 삼청로 학고재는 여세를 몰아 7일부터 김현식의 개인전을 연다.

 '빛이 메아리치다(Light Reverberates’)를 타이틀로 총 46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상하이 전시 이후의 신작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다. 대표적인 연작으로 꼽을 수 있는 ‘Who Likes Colors?’와 함께, 영국의 동화 '퍼시 더 핑크 Percy the Pink'(2003)에서 제목을 차용한 ‘퍼시 더 컬러 Percy the Color’ 연작을 새롭게 선보인다.

  각 연작마다 형태와 색상 등에 다양한 변주를 시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작가 김현식은 "이 전시를 통해 평면으로부터 입체적인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구현하고 싶다"고 했다. 평면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겠다는 의도다.

그가 에폭시 레진에 집착한 건 "나만의 그림, 나만의 작업을 하겠다"는 욕망이었다. 1992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후 유화로 첫 개인전을 열었지만 곧 좌절했다. 다 비슷비슷한 그림에 자신보다 더 테크닉이 뛰어났다. 회화 전공자로서 평면을 놓고 싶지 않았던 그는 투명 접착제류인 에폭시 레진을 발견하면서 차별화를 꾀했다.

  
【서울=뉴시스】 Percy the Yellow, 2017, 에폭시 레진에 아크릴릭, 나무 프레임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102x102x6cm
  10여년간 시행착오를 겪었다. 초기엔 작품 소재 자체를 레진에 통째로 담그기도 했다가 레진의 특성을 파악했다. 레진의 얇은 층을 여러 겹 쌓아 굳히고, 그 위에 송곳으로 긁은 드로잉 선(線)을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그 다음 팬 선들에 원하는 색을 입히고 닦아내면 상감기법처럼 무수한 선들이 색으로 변환된다. 이 과정을 대략 10여 회 이상 반복해야 완성된다. 웬만한 크기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진 적어도 1만 번 이상의 송곳 선 긋기를 거쳐야 한다.

  30년 넘게 지속된 에폭시 레진과의 싸움은 김현식을 '사이 공간'으로 오가게 했다. 레진에 중첩된 수많은 드로잉 선들은 평면에서 입체로, 외피에서 내면으로 나아가게했다.  2차원적인 평면회화가 수천, 수만 가닥의 선들로 3차원 공간을 품을 수 있게된 '통찰의 예술'로 진보한 것.

  수많은 색선(色線)으로 이뤄진 작품은 생동하는 색채의 울림을 전한다. '단색화'의 '21세기 버전'같다. 무념무상의 행위속에 한가지색으로 나온 단색화의 개념과 맞닿아있는 셈이다. 

  작가의 작품을 처음부터 지켜봐오고 전시 서문을 쓴 홍가이 박사는 "그가 빚은 화면 속 무수한 틈새들이 시간을 붙잡아두는 것 같다"며 "미세한 사이의 틈새들이 ‘적막의 울림’을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서울=뉴시스】 김현식 작가

   국내에서는 8년만에 개인전을 연 김현식은 "작업을 통해 보이는 것 너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

  화가로서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는 여정의 입구를 관객에 제시하겠다"는 의지로 "스스로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는 여행가와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촘촘히 그어진 색선들 사이 사이로 반사되는 빛과 그림자가 기존의 색채에 깊이감과 공간감을 더한다. 바라보는 각도와 거리에 따라, 빛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의 색상이 시시각각 변한다.

 균일한 두께로 그어진 반입체적 선들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위 아래로 교차하며 운율을 만들어내는 작품은 다른 세계로 향하는 통로의 입구를 마주한 듯한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화면을 바라보는 순간 투명한 레진 표면에 그림자가 비쳐 작품 프레임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선 듯한 착각마저 든다.

【서울=뉴시스】 Percy the Violet, 2016, 에폭시 레진에 아크릴릭, 나무 프레임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82x82x6cm

 2006~2007년 국내미술시장 활황때 '김현식 머리카락' 작품에 꽂혔던 컬렉터라면 놓치지 말아야할 전시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신한 것 같지만, 결국 초기에 선보인 머리카락의 흔적을 떨칠수 없다. 굽이쳐 흐르던 머리카락이 '스트레이트 퍼머'를 한듯 탱탱하고 찰랑찰랑 해진 듯한 느낌이다. 전시는 3월4일까지.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