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시설법 개정에도 화재 초기진압 언감생심
市, 화재예방·재난대책 TF구성 대책 마련 착수
【서울=뉴시스】특별취재팀 = 20일 새벽 술에 취한 50대 남성이 지른 불로 6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서울 종로5가의 한 여관. 2~3평(6.6~10㎡) 남짓 객실 투숙객 대부분은 주변에서 일하며 장기 투숙하던 사람들이었다. 보증금 없이 한 달에 45만원가량을 내고 머무는 이른바 쪽방 여관 '달방'이다.
화재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최모(53)씨 증언에 따르면 불이 났는데도 여관 내 경보벨은 울리지 않았다. 말다툼과 "불이야" 소리에 잠에서 깨지 않았다면 최씨도 꼼짝 없이 불길에 휩싸였을 가능성이 크다.
걸어서 25~30분 거리엔 종로3가 인근 '돈의동 쪽방촌'이 나온다. 이곳에선 이달 5일 발생한 화재로 60대 남성이 목숨을 잃었다. 좁은 방에서 '부루스타'(휴대용 가스버너)로 라면을 끓인 게 화근이었다.
겨울철 쪽방 형태 건물에서 잇따라 불이 난 가운데 서울 지역 쪽방밀집지역은 건물 노후화 등으로 화재예방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6년 12월 기준 5개 쪽방밀집지역 334개 건물 가운데 38%인 127개 주택이 화재경보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15%인 50개 주택에는 소화기 등 소화장비가 없었다.
소방시설법(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지난해부터 아파트를 제외한 모든 주택이 화재경보기와 소화기 등 소방시설을 의무 설치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화재경보시스템의 경우 감지기 836개, 가스누설 경보차단기 189개, 수신기 76개, 스피커 53개, 앰프 28개, 경종 14개 등이 있다.
그러나 이달 초 화재가 발생한 돈의동 쪽방촌에선 화재경보시스템 6종 가운데 앰프, 가스누설 경보차단기, 경종, 수신기 등 4종 보유대수가 모두 '0'이었다. 동대문 쪽방촌은 스피커와 경종이, 남대문 쪽방촌은 수신기가, 영등포 쪽방촌은 경종이 단 1대도 설치하지 않았다.
소화기 등 소화장비는 전체 주택의 85.0%인 284곳에서 보유하고 있었다. 종류별로 일반소화기 1509대, 자동확산 소화용구 362대, 투척식 소화기 159대 등이 있다.
긴급피난장비 보유율은 더 낮았다. 전체 주택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57곳(47%)에 긴급피난장비가 전무했다.
장비 종류별로 비상 조명등(427개)과 휴대용 손전등(318개)은 숫자가 많았으나 화재 등 긴급 상황 때 지상으로 내려갈 수 있는 완강기는 32개, 방연 마스크는 61개에 그쳤다. 지난해 기준 4033개 쪽방당에 사는 주민이 3274명인 점을 고려하면 방연 마스크는 54명당 1개꼴에 불과한 셈이다. 이마저 남대문 쪽방촌엔 마스크가 1개도 없다.
목조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쪽방밀집지역 특성상 신속하게 진화하지 않으면 대형화재로 커질 위험이 크다. 화재를 빨리 진압할 스프링클러가 필요하지만 의무 대상이 아닌데다 설치 비용 탓에 집주인들이 난색을 보인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법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 건물에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게 돼 있어 규모가 작은 쪽방 형태 건물들은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다"며 "법으로 강제할 수 없는 스프링클러를 100㎡당 1000만원 정도 들여 자발적으로 설치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노후가 심한 쪽방건물은 구조상 스프링클러 설치 자체가 어려울 거란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 관계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쪽방 건물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목조건물이 스프링클러 설비를 버텨내지 못해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시는 최근 잇딴 화재발생에 대응해 자치구, 소방재난본부 등과 '쪽방촌 화재예방·재난대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 우선 다음달까지 쪽방밀집지역 합동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개선대책 종합계획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상반기 중으로 시설물 안전점검 및 예방활동, 건물 화재보험 가입 등을 권유하고 쪽방촌 내 소화기·경보기·감지기 등 소형 소방장비 확충, 방염 처리 등에 나선다.
중·장기적으론 별도 계획을 세워 ▲쪽방 건물 보강 후 스프링클러 설치 ▲쪽방촌 지역 도시재생사업 추진 ▲국구보조 쪽방촌 개선사업 추진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다음달 초까지 시청과 구청, 소방서가 합동으로 조사를 한 뒤 개선방향을 모색할 것"이라면서도 "쪽방이 공공건물이라면 예산을 투입해 스프링클러 등 소방장비를 설치할 수 있지만 개인 건물엔 마음대로 설치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limj@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