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네이에게 죽음을" 구호 등장
"개혁·강경 모두에 신물…끝장내자"
【서울=뉴시스】 이현미 기자 = 지난 28일 시작된 이란 반(反)정부 시위가 사흘간 확대일로다. 일각에서는 이번 시위가 장기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시위는 8년 전과 달리 이슬람 공화국 정권 자체와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통치를 끝낼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주목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가 확보한 이란 반정부 시위 촬영 동영상에 따르면 현재 반정부 시위는 이란의 수십 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동영상에서 시위대는 단순하게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란인들은 개혁파와 강경파 모두에게 신물이 났으니 둘다 끝장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테헤란에서 아흐바즈, 콤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의 도시와 작은 마을의 중산층과 학생들, 노동자, 노동조합 등이 시위에 대거 동참하고 있다. 시위대는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우리는 이슬람 공화국을 원치 않는다", "개혁파와 강경파 모두 끝났다"는 구호가 쏟아지고 있다.
이는 시위대가 이란의 리더십에 정면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이슬람 공화국의 권력 기반인 노동자 계급이 시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하산 로하니 정부가 미국 등 외세의 도전에 맞서고,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테헤란 대학 앞에선 한 순간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이란에서의 삶을 위해 가자를 떠나고, 레바논을 떠나라"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동영상에 촬영됐다. 또 소셜미디어를 통해선 수백명의 군중들이 이란 정부군 앞에서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모습도 찍혔다.
수백명의 진압 경찰이 테헤란 대학 인근에 배치돼 대학으로 향하는 주요 통로를 차단했다. 시위 참여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30일 한 남성이 경찰에 체포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대형 스피커로 군중을 분산시키려고 시도했다. 이란 정부군이 최루탄을 터뜨리거나, 두 명의 남성이 바닥에 누운 채 움직이지 않는 모습, 그리고 경찰의 총에 맞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 등이 동영상을 통해 확인됐지만, 사망자가 발생했는지는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란 관리들은 시위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국민들의 경제적 요구를 듣고 해결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반정부 시위대가 이번 사위를 정치화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란 당국은 특히 30일에 연례 정부 지지자들 모임을 갖고 이들이 반정부 시위대에 맞서 맞불 집회를 갖도록 했다. 지난 2009년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 때보다 경찰의 진압 강도는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WSJ는 전했다.
이번 시위는 물가 상승과 높은 실업률 등 이란인들의 경제적 좌절에서 비롯됐다.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 2015년 핵협정 이후 이란의 경제적 고립이 완화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새로운 제재가 추가되면서 이란인들의 삶은 갈수록 곤궁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그리고 백악관은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이란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근거가 없는, 이란 내부 문제에 간섭하려는 시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현재 이란인들은 이란 정부가 역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레바논, 시리아 등에 대외원조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다른 나라까지 신경쓰게 생겼느냐는 불만인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 연구원 베흐남 벤 탈레블루는 2009년 항의시위와 비교하는 게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란인들은 국가의 미래를 통제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두 세기 동안 이란의 거리 시위는 경제, 사회, 문학, 그리고 종교적 불만에서 시작해 정치 비판의 모티브로 작용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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