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분석 '태평양 전쟁사1'

기사등록 2017/12/30 08:44:33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일본역사학연구회가 쓴 '태평양 전쟁사1'가 국내 번역·출간됐다.

전쟁에 반대하며 숨죽이고 있던 진보적 학자들이 태평양전쟁 패망 직후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역사학연구회도 그중 하나였다.

동경대 사학과를 중심으로 '과학적 역사'와 '유물사관'에 입각한 역사연구를 표방해 오던 일단의 연구자들이 주요 멤버이다. 이들은 전쟁 전부터 일본의 천황제와 배타적 침략주의 뿐만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파시즘과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벌어졌던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천황제와 파시즘, 그리고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집대성했다.

그 결실이 바로 1953년부터 1954년에 걸쳐 출간된 '태평양전쟁사'이다. 정치·경제·문화 등 당대 최고의 연구자 약 50여 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이 책은 지금까지도 일본의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을 엄밀히 분석한 최고의 역작으로 손꼽힌다.

출판사 채륜은 "이번 1권에서는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다뤘다"며 "2권에서 진주만공격에서부터 패전까지, 3권에서 전후 일본과 세계의 정서를 담아 완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1권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전후한 시기 일본 내 다양한 세력과 정파, 파벌들 간의 이합집산과 암투, 모략과 경쟁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각 세력 내에서의 다양한 파벌과 암투가 상세히 묘사됐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원로와 귀족, 중신들의 막후 정치, 여야 정당들 간의 권력투쟁, 정치인과 재벌의 결탁, 정치세력과 군부세력의 견제와 힘겨루기, 우익세력과 군부의 결탁 뿐만 아니라, 구 재벌과 신흥 재벌 간의 경쟁, 우익세력 내부의 경쟁과 분화, 군부 내 황도파와 통제파의 대결, 관동군의 폭주와 군 수뇌부의 기괴한 협조, 육군과 해군의 반목과 경쟁, 혁신세력과 노농운동의 부침, 분열 등을 보여준다.

"아시아에서 중일전쟁의 포성이 멈추었을 때 유럽에서는 독일의 전쟁준비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1933~1934년도 독일의 군사비는 30억 마르크였는데 1936~1937년도에는 126억 마르크로 불어났다. 그리고 1936년 독일 공군의 작전용 비행기 수는 2000기에 달해 영국의 공군력을 능가하게 되었다. 군사용 화학공업의 발전은 매우 급격히 이루어졌다. 이제 나치 독일은 침략을 향해 전력질주를 시작한 것이다."(536쪽)

각 시대별, 단계별, 지역별 경제구조에 관한 세밀한 분석과 통계 자료가 담겼다. 세계적 공황과 통화, 금융 등의 거시경제 분석부터 중화학공업, 군수공업, 면방직 등 산업구조의 변화와 조선과 일본 서민들의 생필품 가격에 대한 묘사까지 총망라했다.

단순한 '전쟁사'가 아니라 일본·조선·중국 등 동아시아의 시대상과 문화·예술 분야에 관한 통사적 성격의 '문화사'이기도 하다.

우파에서 좌파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 엘리트들의 사상적 동향은 물론이고, 문학작품·연극·예술·교육·과학계 변화까지 세밀하게 소개했다.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일제의 규제와 군국주의의 폭압이 강도를 더해갈수록 진보적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이 어떻게 저항했고 탄압당하고 투항하고 전향했는지 등이 그려졌다. 아르고(ARGO)인문사회연구소 옮김, 576쪽, 채륜, 2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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