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화해·치유재단 설립 채근…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지원 중단 종용

기사등록 2017/12/27 15:00:00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좋은 대한민국 만들기 대학생 운동본부가 28일 오전 서울 중구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위안부 화해 치유 재단' 설립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2016.07.28.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이 화해·치유재단의 조속한 설립을 직접 채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민간단체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지원도 끊도록 사실상 종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는 27일 화해·치유재단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념사업에 대한 점검·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가부는 해당 사업의 적절성 등을 파악하기 위해 재단 설립 과정, 위안부 피해자 대상 현금지급사업,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지원 중단 등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문제를 지난 7월21일부터 최근까지 조사했다.

 이날 발표된 내용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불법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빠른 시일내에 일단락시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가 다수 드러났다.

 우선 화해·치유재단의 경우, 소관부처인 여가부와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재단 설립이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앞서 2015년 12월28일 한일 정부는 합의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지난한 갈등을 접기로 했다. 합의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는 10억엔의 예산을 거출해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시행한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들과 협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당시 피해자들은 물론 시민사회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한일 합의 이틀후인 12월 30일 개최된 관계부처회의에서 외교부는 설립절차 및  추진일정과 함께 소관부처에 대한 별도 협의 없이 재단등록 부처를 여가부로 명시한 '재단 설립계획안'을 제시했다.

 이듬해 1월 6일 박 대통령은 "조용하고 신속하게 설립을 추진하라"는 지시사항을 여가부에 전달했다.

 이에 따라 여가부는 외교부와 함께 1월 29일 재단설립을 위한 민관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3∼4월 설립을 목표로 필요한 절차를 진행했다.

 이후 재단의 설립방식, 피해자별 지급액 결정과 국내외 정치상황, 일본출연금의 거출시기 등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설립이 늦어져 7월 28일 재단이 출범했다.
 
 여가부는 이에 대해 "재단 설립 과정에서 절차상 위법사항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여가부가 신청일로부터 평균 20일이 소요되는 법인설립허가를 5일 만에 처리하고, 설립허가를 위해 필수적인 법인사무실의 임대차 계약을 소속 직원이 대리로 체결하는 등 재단설립을 적극 지원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일본측 거출금과는 별도로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에 인건비와 관리비 등을 운영비조로 부적절하게 지원한 사실도 나타났다.

 여가부는 2016년 8월 30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념사업 예산의 일부를 재단의 인건비, 관리비 등 운영비 명목으로 지원했다.

 통상 민간단체에 경비를 보조할 때에는 보조받는 민간단체가 관련 사업 수행실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화해·치유재단은 사업 수행실적이 없음에도 국고의 도움을 받았다.

  국고보조 전에 받아야 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심의위원회의 심의도 없었다.

 여가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현금지급사업과정서도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여가부는 생존피해자에게는 개별면담 등을 통해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한 후, 지급신청서를 접수하고 심의 등의 절차를 거쳐 현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 및 재단 관계자가 피해자들에게 한일합의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현금수령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거나 설득하는 발언들을 확인 할 수 있었다는 게 여가부의 판단이다.

 또한 현금지급절차에서 필수적인 '지급신청서'는 피해자 동의하에 당사자가 직접 작성했으나 피해자가 노환 또는 문맹 등으로 작성하기 곤란한 때에는 보호자가 대리로 작성했다. 여기에 일부 피해자의 경우 동의 의사를 표시했더라도 고령·언어(중국어) 제약 등으로 인해 지급되는 현금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고 여가부는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도 관심을 보였다.

 여가부는 2015년까지 민간단체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을 통해 지원해 왔지만 2016년부터는 예산지원을 중단했다.
 
 여가부는 당시 중단 사유에 대해 "유네스코 등재는 민간추진 원칙으로 정부지원이 부적절하고 정부지원 시 관계국의 반발로 오히려 심사에 불리하다"고 해명했지만 중단배경에는 박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도사리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2016년 1월 6일 "유네스코 등재 지원 사업에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관여 말고, 추진과정에서 정부 색을 없애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곧 사업 지원은 중단됐다.

 여가부는 이번 점검 조사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과 관련해 당시 소관부처로서 책임을 통감했다. 

 여가부는 "한일합의 발표 이후 재단설립과 운영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고, 현금지급사업 집행과정에서도 할머니들께 갈등과 심적인 고통을 드린 것에 대해 깊이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념사업 추진시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해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이번 점검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재단 운영방향 등에 대해서는 관계기관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sds1105@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