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1917년 뉴욕 한 전시장.
제목은 '샘(Fountain). ‘R. Mutt(마르셀 뒤샹)'라고 사인만 되어 있던 남성용 소변기가 세계 미술사를 바꿀줄은 누구도 몰랐다.
전시에 출품됐지만 천박하고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거절돼 전시 뒷편에서 숨죽였던 '변기'는 제목 '샘'처럼 터져 도발했다. 하얀 벽에 걸려 고고함을 내뿜던 그림의 권력에 찬물을 끼얹은 셈으로 기존 예술의 개념을 완전히 전복시켰다. 요즘말로 미술의 적폐청산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변기'는 전시장에 나와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쏘아올렸다.
제품과 작품 사이에서 '미술이 별거냐'며 파격과 함께 각성시킨 건 '일상이 예술'이라는 것. 뒤샹의 '샘' 이후 미술세계는 다시 '팝 아트'로 뒤집혔다.
#1955년 로버트 라우센버그 '콤바인팅 페인팅' 이 나왔다.
이때 주목할 점은 신문, 거울, 침대 등 일상의 사물이 작품의 주재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이 라우센버그의 사물 활용법을 평면으로 재흡수했고, 이들이 사용한 벤데이(Ben day) 인쇄방식과 실크스크린 기법은 미술사를 경쾌하게 변신시켰다.
진득한 물감과 붓질로 그리던 초상화나 풍경을 프린트해내며 '단 한점뿐'이라는 희귀성까지 침범하며 미술의 권위를 끌어내린 것.
특히 무한 복제가 가능한 반복으로 세계 미술계를 '팝아트 왕국'으로 재편한 건 앤디워홀이다. 작가공장(팩토리)을 차리고 예술노동자를 고용하며 깡통 수프캔부터 마릴린먼로등 유명 초상화까지 색색으로 찍어냈다.
기존의 미술에선 '참을수 없는 가벼움'으로 경박스럽게 보이는 팝아트지만 현재까지 동시대 현대미술작가들을 지배하고 있다. 국내미술시장을 이끈 스타작가들 모두 앤디워홀의 후예들이다.
전설이 사라지면 유명세가 대체한다. '미술이 별거냐'며 일상용품처럼 찍어낸 그때 그 시절 작품들은 희귀품으로 천정부지로 치솟은 작품값을 자랑한다. 앤디 워홀의 ‘실버 카 크래시’는 2006년 1억5000만달러에 낙찰됐고 워홀을 추종한 장 미셀바스키아, 키스해링의 작품도 수십억에서 수천억대에 거래된다.
#2017년 르 메르디앙서울 호텔 입구에 위치한 M컨템포러리.
팝아트 대표작가 5인의 주요 작품을 전시한 'Hi- 팝아트'전이 15일 개막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을 중심으로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버트 인디애나 등 대표 팝 아티스트의 다양한 작품 160여점을 선보인다.
현재 89세인 로버트 인디애나를 빼고 사망해 ‘팝아트 전설'이 된 이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M컨템포러리 강필웅 디렉터는 “미국 팝아트 거장들의 향연을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를 위해 각국의 개인 소장된 작품 중 엄선해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공동기획사 코메디아팅(ComediArting Srl)의 Maria Dolores Duran Ucar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의 아티스트들은 20세기 후반 생동하는 뉴욕에서 예술에 대한 새로운 길을 연, 미국 팝 아트의 위대한 주인공인만큼, 대중문화에서 시작된 예술이 최상위 미술이 되기까지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전시는 각 작가들의 개인전처럼 꾸몄다. 로버트 라우센버그에서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을 지나 로버트 인디애나, 키스 해링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팝 아트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활동 시기와 독자적인 주제 의식을 고려하여 각각의 특색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연출했다.
1960년대 팝아트 운동이 일어난 시점부터 미국 팝아트 운동의 부흥을 이끈 대표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삶과 당대의 문화를 피부로 느껴볼 수 있다. 31세,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키스해링의 마지막 작품인 '종말 시리즈' 8점은 국내에서 첫 공개되는 작품이다.
빅뱅 승리와 배우이자 가수인 유준상이 오디오 가이드로 작품설명을 해준다.
#팝 아트가 살아남은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18세기 인상파 화풍의 풍경만이 예술이라는 것이 아닌 일상의 사물, 공간,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전시가 보여주는 건 '일상이 어떻게 예술이 되어 미술관 벽에 걸릴 수 있게 되었는가'다. 어디선 본 듯한 '팝아트의 화려함과 단순함'이 그동안 얼마나 우리의 뇌구조를 지배해왔는지도 깨닫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편,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흐려놓은 팝아트의 진수를 볼수 있는 이번 전시는 '호텔 미술관'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팝아트가 말하고자 했던 ‘Life is Art’를 실천한다는 점에서다.
미술관에서만 보는 비싼 미술품이라는 통념을 깨고 이번 전시는 M컨템포러리 전시장에서 르 메르디앙 호텔 1층 로비까지 이어져 '일상과 하나인 예술'을 보여준다. 호텔은 숙박만 하는 곳이 아닌 '문화 아지트'로의 변신이다. 거대한 거리 미술관 처럼 외벽을 장식해 강남의 거리문화도 작품화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림, 그래도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 나온 '팝아트 황제' 앤디워홀의 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내 그림과 영화와 나를 보면 거기에 내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어요”
또 콤바인의 혁신성을 보인 '팝아트의 대부' 로버트 라우센 버그 말도 들어보자.
"그림은 생활과 예술의 결합이다. 나는 그것을 구분하는 사이에서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전시에 나온 작품은 에디션이 있는 만큼 판매도 한다. 2018년 4월 15일까지. 입장료 1만2000~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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