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뉴시스】김경호 기자=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水雲) 최제우(1824~1864년)가 인간을 존중하고 문화 다양성을 인정했던 정조대왕의 영향을 받았고 이를 동학의 주요 내용(교리)에 투영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기 수원시가 동학농민혁명 제123주년을 기념해 13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연 학술대회에서 김준혁 한신대 교수는 “정조는 노비제도 폐지를 주장할 정도로 ‘인간의 평등’에 대해 생각했다”면서 “이러한 정조의 정신이 영남 남인 출신으로 규장각 초계문신이었던 최벽과 그의 일가이자 최제우의 아버지인 최옥을 통해 최제우에게 전해진 것이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정조의 인간존중이 투영된 동학의 평등정신’을 주제로 발표한 김 교수는 “정조는 신분의 평등을 위해서는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제도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1783년(정조 7년) 왕명에 따라 자휼전칙(字恤典則), 1778년(정조 2년) 흠휼전칙(欽恤典則) 등 정책을 만들었다”면서 “최옥의 외동아들인 최제우에게 정조의 개혁사상과 인간존중 정신이 전해졌을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또 “최제우의 제자인 최시형도 정조의 인간존중 정신이 투영된 '나를 향하여 신위를 베푼다'는 뜻의 ‘향아설위’(向我設位)를 주창하고 이를 현실화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과 하늘을 동일시하는 동학사상은 세계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진보적 사상이자 인권의 기반”이라고 평가했다.
‘동학에서 천도교로의 개편과 3·1운동- 수원지역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표한 임형진 경희대 교수는 “수원지역 3·1혁명(운동)은 초기에는 천도교와 기독교 중심으로 전개됐다”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천도교가 운동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천도교, 개신교, 유림 세력 등 다양한 세력이 공존했던 수원은 어느 지역보다 시위가 격렬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정조의 개혁정치로 만들어진 도시인 수원에서 가장 개혁적인 동학을 1905년 제3대 교주 손병희가 개칭한 종교인 동학 천도교가 한때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면서 “정조가 꿈꾼 세상은 결코 동학 천도교가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수원지역 동학·천도교 유적지와 3·1운동 탐방로’를 발표한 이동근 수원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수원지역 3·1운동은 3월 1일 화홍문 방화수류정의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4월 중순까지 지속해서 일어났다”면서 “민족정신이 투철했고, 많은 종교인과 지식인, 지역 주민들이 하나가 돼 식민체제에 저항하며 항쟁했다”고 말했다.
‘동학의 글로컬리제이션과 인문도시로서의 수원’을 발표한 조극훈 경기대 교수는 “동학의 글로컬리제이션은 동학의 핵심사상을 현재화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라며 “동학의 근본사상으로 하느님을 모신다는 뜻의 시천주(侍天主)적 세계관,불연기연(不然其然)의 변증법적 논리 등 동학의 규범과 논리는 보편과 개별의 융합과 통일인 글로컬리제이션의 논리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이어 “수원시는 인문도시를 표방하면서 정책개발과 문화재 보존·개발, 도시재생 등의 분야에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면서 “동학의 글로컬리제이션은 수원 지역의 특수성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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