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 대신 '노머니데이'···2030 알뜰소비 "그레잇!"

기사등록 2017/09/17 11:43:47

재테크 카페 '무지출데이' 실천, 친구들과 '영수증 모임'도
자투리 적금 가입 증가···포인트를 현금 전환 '앱테크' 인기
지상파 등극 '김생민의 영수증' 알뜰소비 바람 맞물려 화제
"청년실업·불황 장기화에 과시적 소비-극단적 절약 양극화"

 【서울=뉴시스】한주홍 기자 = 직장인 A씨는 '주 3회 무지출데이'를 실천 중이다. A씨는 달력에 매일 지출 내역을 적고 돈을 쓰지 않은 날엔 '노머니데이'라고 크게 적어 놨다. '무지출데이'란 하루 지출이 0원이라는 의미다.

 A씨는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한 포털사이트 재테크 관련 카페에 매일 지출 내용을 적어 올린다. 카페 회원들은 여기에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같은 댓글을 달아준다. 이 카페엔 회원들이 절약 인증 글을 올리는 게시판이 마련돼 있다.

 한 번 사는 인생을 즐기자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열풍 속에서 그래도 한 푼이라도 아껴 쓰자며 '알뜰 소비'에 집중하는 2030세대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즐거움을 느낀다는 취지의 이른바 '시발비용'(홧김에 쓰는 비용), '탕진잼'(소소한 낭비로 느끼는 재미)이 유행하는 트렌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전통적인 근검절약 기조를 꿋꿋이 이어간다.

 개그맨 김생민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은 이같은 알뜰 소비 바람과 맞물려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청취자가 사연을 보내면 김생민은 이들의 소비습관을 분석해준다.  돈을 제대로 아낀 이들에겐 "그레잇(Great)!"이라고 칭찬해주는 반면 충동구매나 대량구매를 하는 이들에겐 "스튜핏(Stupid)!"이라고 일침을 가해 요즘 화제 유행어로 등극했다. 청취자들 반응이 뜨겁다 보니 지난달부터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으로까지 만들어져 방영 중이다.

 주부 김주연(가명·27·여)씨도 '김생민의 영수증'을 들으며 소비습관을 되돌아보게 된 알뜰족이다. 김씨는 "그동안 '욜로'로 산 걸 반성했다. 직장생활을 2년이나 했는데도 모은 돈이 없어 충격을 받고 저축을 결심했다"며 "커피값을 아끼는 식으로 3개월째 절약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한주홍 기자 = 걸음 수 만큼 포인트를 주거나 영수증을 찍어서 올리면 포인트로 전환해주는 '리워드앱'이 인기를 끌고 있다. 2017.09.17. hong@newsis.com

 그는 "지인들에게도 '김생민의 영수증'을 추천해 서로 절약하는 데 도움을 준다"며 "최근 친구들과 '영수증 모임'을 시작했다"고 즐거워했다. 

 '알뜰족'이 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은행을 이용해 돈을 절약하는 습관을 만들거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소비 경험을 공유하고 개선하는 방식을 택한다. 스마트시대에 걸맞게 앱을 이용한 재테크인 '앱테크(AppTech·앱과 재테크의 합성어)'도 늘고 있다.

 은행에서는 첫날엔 1000원, 둘째날엔 2000원 등 매일 1000원씩 액수를 늘리는 등 '자투리 금액' 적금 상품으로 알뜰족을 겨냥하고 있다. 최대 일 3만1000원까지 내고 다음 달엔 다시 1000원부터 시작하는 방식이다.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 사이에서는 정해 놓은 하루 생활비가 남으면 자동으로 통장에 이체되거나 하루 최대 납입금액이 3만원으로 제한되는 적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커피값, 유흥비 등을 아껴 저축하는 소액적금이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라며 "짠테크 관련 적금의 가입연령대가 20대는 30%, 30대는 41%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취업준비생 김은지(26·여)씨는 "한 달에 몇십만 원 단위의 적금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매일 원하는 액수를 납입할 수 있으니 부담이 적다"며 "매일매일 돈을 모은다는 뿌듯함도 크다"고 설명했다.

 운동하거나 영수증을 모으는 등 작은 습관으로 돈을 모을 수 있는 앱테크도 짠순이와 짠돌이들의 공략 대상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광고를 보면 포인트나 캐시로 보상해주는 '리워드앱'이 대표적이다. 하루 걸음 수 만큼 포인트를 주거나 영수증을 찍어서 올리면 이를 포인트로 전환해주는 앱도 있다.

 직장인 이재호(31)씨는 "100보를 걸을 때마다 1캐시씩 받을 수 있는데 이를 모으면 현금으로 전환해준다"며 "현재 300캐시를 모았다. 더 모아서 커피 한 잔으로 바꾸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한주홍 기자 = 한 카페 회원들이 하루 지출 0원을 의미하는 '노머니데이' 인증 글을 올리고 있다. 2017.09.17. (사진 = 네이버 카페 '월급쟁이 재테크 연구 카페') hong@newsis.com

 같은 앱을 이용 중인 직장인 서모(28·여)씨도 "걸음걸이를 적립하기 위해 가까운 거리는 걷게 되는 효과가 있다"며 "교통비도 아끼고 일거양득"이라고 말했다.

 알뜰족들은 돈을 모으거나 씀씀이를 줄이는 방법을 인터넷상에 올려 '짠돌이 되는 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회원 수가 24만명에 달하는 '월급쟁이 재테크 연구 카페'에는 통장을 용도별로 개설해 관리하는 '통장 쪼개기'나 매일 사용할 금액을 정해 봉투에 나눠 넣는 '봉투 살림법' 같은 절약 비법을 나누는 글들이 올라온다.

 절약일기를 공유하는 카페도 있다. 회원들은 식비 절약을 위해 냉장고 안에 있는 식재료만을 사용하는 '냉장고 파먹기'를 실천한 사진이나 점심 도시락을 싼 사진을 올리며 절약을 인증한다.

 이같은 모습은 결국 2030세대가 지속되는 경제위기에 맞서기 위해 선택한 새로운 수단이라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 사이에서 적은 돈으로 남에게 보여주는 외형적인 소비를 하는 데 집중하느냐, 미래를 위해 극단적으로 아끼느냐 두 가지 양극화된 소비 방식이 나타나고 있다"며 "사회구조가 점점 더 청년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돈에 얽매이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위기가 장기화하고 청년 실업난이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소비행태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등장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hong@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