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한강(漢江)이면 그냥 한강이지, 남한강(南漢江)은 무슨 말인가요?"
충북환경운동연대 박일선 대표가 9일 강원 태백에서 발원해 충주·제천·단양 등 충북 북부지역을 흐르는 국가하천 '한강'을 '남한강'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됐다는 주장을 하면서 남한강이란 이름이 언제부터 불렸는지 관심을 끌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강원, 충북 북부를 흐르는 큰 하천의 공식 명칭을 '한강'으로 하고 있다.
교통부의 '한국하천일람'에 따르면 한강권역에는 한강을 본류로, 달천·섬강·청미천·복하천·북한강·소양강·임진강·안성천 등 19개의 본류와 지류가 있다.
이들 한강의 지류 가운데 북한강은 있지만, 남한강은 존재하지 않는다.
1927년 5월 조선총독부가 관보에 고시한 '조선하천령'에도 강원 정선군 북면 오대천 합류점을 기점으로 하고 경기 김포군 월곶면 용강리를 종점으로 하는 한강의 1지류에 평창강·달천·섬강·북한강·중랑천·임진강 등은 있어도 남한강은 들어 있지 않다.
조선총독부가 1928년 펴낸 '조선토목사업지'에도 '한강에는 금강산에서 발원하는 북한강과 오대산 우통수에서 발원하는 남한강 등 두 개의 큰 물줄기가 있다. 북한강은 섬강과 함께 한강의 제1지류로 분류되기 때문에 실제로 한강의 본류를 이루는 것은 남한강'이라고 해서 남한강이 한강의 본류임을 명확히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산천 조에서 월악산을 시로 읊은 이숭인(李崇仁)은 '월악을 우러러보니 중원에 비껴 있는데, 한강의 물이 처음 발원했네'라며 충주를 흐르는 하천을 한강으로 표기했다.
'한국충청북도일반'(1909), '충주발전지'(1916), '충청북도요람'(1928) 등 일제강점기에 나온 문헌에도 충주를 흐르는 하천을 대부분 '한강'으로 적고 있다.
'충주관찰지'(1930)에는 '중앙에 한강 본류가 흐르고 있어 경성(서울) 용산 방면에 나룻배를 이용하는 교통편이 있다'며 충주의 수운(水運)을 설명했다.
하지만 같은 시대 '조선총독부 관보'나 신문에는 '남한강'이란 용어가 적잖이 보인다.
1924년 6월21일 자 관보에는 '강원도 정선군 북면 남평리 남한강 이용의 관개사업이 남창우에게 허가되다'는 기사가 나온다.
1920년 7월8일 자 동아일보에도 '경기도 관내 여주군 남한강에는 20척9촌이 증수(增水)되고 용산 안 한강에는 15척1촌이 증수됐다'는 기사가 보인다.
거슬러 올라가 조선 고종 3년(1866) 음력 9월 '비변사등록'에는 남한강과 북한강을 각각 '남한(南漢)'과 '북한(北漢)'으로 표현했다.
남한강을 '남한'으로 표기한 기록은 영조 4년(1728) 음력 4월 영조실록 기사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문헌에 나오는 '남한'을 번역자들은 '남한강'으로 풀이했다.
조선시대에는 이 밖에 한강의 본류 남한강을 '벽허(碧虛)', '남강(南江)', '습수(濕水)' 등으로 이름 붙였고, 서애 류성룡(柳成龍·1542~1607)은 남한강·북한강·서강을 '삼강(三江)'이라고 했다.
'디지털충주문화대전'에서 '본래 명칭은 한강이나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므로 편의상 남한강이라고 부른다'고 유래를 설명한 내용대로 공식 명칭인 '한강'을 두고 북한강과 견주어 언제부터인가 '남한강'이란 이름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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