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조윤영 =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9월 방북설이 일본 정계를 흔들고 있다.
발단은 7월 28일에 있었던 아베 총리와 유명 저널리스트 타하라 소이치로(田原総一郎)와의 오찬이다. 2일 일간현대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오찬에서 타하라는 아베 총리에게 정치 생명을 건 모험을 해봐야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에 아베 총리는 타하라에게 하나씩 질문하며 진지하게 들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정계에서는 타하라가 언급한 모험이 아베 총리가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3일 일본 방송들은 아베와 타하라의 회동, 그리고 아베의 방북설에 대해 관심있게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3일 개각을 전격 단행했다. 지지율 하락으로 궁지에 몰린 아베 총리는 반아베파로 불리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를 총무성에 전격 기용하는 등 나름 혁신을 꾀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20%대까지 추락한 지지율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9월 방북설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개각만으로 지지율을 만회하기에는 아베 총리의 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사실 위기 타개를 위해서는 개각보다 더 큰 승부수가 필요하고, 그것은 북한 밖에 없다는 얘기들이 일본 정계에서는 이전부터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지 이틀 뒤인 지난 7월 31일 오전 8시쯤 아베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대통령과 52분간 통화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북에 압력을 더욱 가하기로 했으며, 미·일의 견고한 결속 아래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꾀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날 전화통화가 북한 핵·미사일 발사 때보다 길었다는 점에서, 혹시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있어 트럼프 대통령과 공조해온 아베 총리가 현 상황에서 방북을 성사시키려면 무엇보다 미국의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는 몽골에서는 다키자키 시게키(瀧崎成樹)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심의관이 북한 외무성 미국연구소의 리용필 국장을 만났다. 당시 다카자키는 핵과 미사일 개발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을 북한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회동이 일본인 피납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잦은 미사일 발사에 대비해 지난 3월부터 주민 피난 훈련을 실시하고, 2006년부터 시행해 온 북한 제재에 추가 조치를 하는 등 북한의 도발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일본인 납치 문제는 분리시켜왔다.
그만큼 아베 총리에게 납치 문제 해결은 절실하다. 2004년 당시 관방부장관이었던 아베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와 함께 방북한 것을 계기로 인지도가 급부상한 적이 있는 만큼, 납치 문제 해결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방북을 아베 총리의 위기를 타개할 승부수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아베의 기대대로 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02년 고이즈미 방북 당시 김정일이 일본인 납치에 대해서 사과하고, 납치 피해자 5명과 그 가족들을 임시 귀국시켰지만, 일본 정부는 납치 피해자 전원 귀국을 조건으로 내걸었던 금전적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후 북한의 태도가 비협조적으로 바뀌면서 북일간의 논의가 잘 진전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김정은 집권 이후 잦은 숙청으로 책임 추궁이 두려워 일본인 납치 문제에 나서는 북한 간부들이 별로 없고, 게다가 일본과의 관계에 적극적이었던 북한의 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김양건이 2015년 교통사고로로 사망하면서 납치 문제 논의가 쉽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9월 17일은 고이즈미 총리가 처음 방북한지 꼭 15년이 되는 날이다. 9월에 지지율 하락 등으로 위기에 몰린 아베 총리가 방북을 승부수로 던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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