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사태 9년]"피해 10조원 추산···알토란같은 中企 다 무너져"

기사등록 2017/06/22 05:00:00
【서울=뉴시스】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가 지난 20일 여의도 국회에서 '키코 사태 재조명을 통한 금융상품 피해구제방안 정책토론회'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조붕구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장이 발언하는 모습. (제공 =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조붕구 기업회생지원협회장 "매출·임직원, 10분의 1로 줄어"

【서울=뉴시스】박지혁 기자 = "나부터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108배를 하고, 원주에서 여의도까지 자전거를 14시간이나 탄 적도 있습니다."

조붕구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장은 유압 중장비업체 코막중공업의 대표다. 2008년을 잊을 수 없다. 은행의 권유로 '키코(KIKO·Knock In Knock Out)'에 가입했다가 180여억원의 피해를 봤고, 신용등급 하락에 2012년에는 법정관리로 바닥을 경험했다.

매출은 10분의 1로 줄었고, 100여명이나 있던 임직원도 대부분 내보내야 했다. 현재 10여명으로 회사를 어렵게 꾸려 나가고 있다.

'키코'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한 통화옵션상품이다. 일정 범위 이상으로 환율이 변동되면 환손실 이상의 손해를 볼 수 있다. 2008년 은행들의 권유로 여러 중소기업들이 가입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환율이 폭등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조 회장은 "정말 처참했다.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던 알토란같은 중소기업들이 그때 '키코 사태'로 다 무너졌다"고 회상했다.

기업회생지원협회에 따르면 피해 초기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에 가입한 기업은 1000개를 넘었고, 피해 규모는 최소 3조원 수준이다. 기업의 도산과 상장폐지 등으로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기업까지 보태면 10조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그나마 코막중공업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소송 중에 상장폐지된 회사가 있는가 하면 대표가 감방에 들어간 기업도 있다. 수십만명의 소액주주들도 피해를 입었다.

지난 20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3개사 주주 대표들의 커뮤니티에 가입된 피해자 수만 1만6000여명이다.

조 회장은 "당시 은행이 '사기 상품'을 '사기 판매'한 것이다. 검찰이 기소하려고 했던 핵심 중 하나가 헤지 기능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며 "은행에서 인센티브에 혈안이 돼서 자신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키코' 상품을 팔며 사고를 친 것이다. 상품에 대한 이해가 있던 은행은 이 상품을 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제통화기금(IMF)과 모든 국가들이 사기 상품이라고 해서 징벌한 상품을 우리는 무혐의로 처리했다"고 덧붙였다.

수사와 판결에 대한 강한 불신도 드러냈다.

그는 "죄를 어떻게 받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은행 측에 서서 이득을 챙긴 대형 로펌들, 그걸 그대로 믿고 판결한 판사들 모두 문제"라며 "앞 정권에선 아무리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이어 "정치권, 시민단체와 연대해서 재수사 촉구 운동을 하고, 요청할 것이다. 이제 세상이 바뀌지 않았느냐"며 "당시 연관돼 있던 검찰, 은행 관계자들 모두 처벌받아야 한다. 완벽히 파헤쳐서 반드시 피해 구제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기업회생지원협회는 검찰 재수사와 '키코 사태 피해보상 특별법' 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fgl75@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