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살 중학생 무리가 단체 추모···대다수 어른들은 외면
【서울=뉴시스】 박준호 기자 = #. 2002년 6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비가 오는 궂은 날씨 속에서 열 명도 안 될법한 한 무리의 학생들이 또래 친구의 안타까운 죽음을 시민들에게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 '광장'은 한일월드컵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다.
#. 2017년 6월13일 서울 광화문광장 한 편에는 애띤 여중생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차려졌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후덥지근한 날씨는 추모객은 커녕 갈 길 바쁜 시민들의 발걸음을 더 재촉했다. 시민분향소에는 시민은 없고 흑백의 두 영정사진만 간간히 부는 바람을 맞았다.
15년 전 미군 장갑차(궤도차량)에 치여 사망한 신효순·심미선양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서울 도심 한 복판에 차려졌다. 그간 유가족도 없이 시민단체들만의 조촐한 추모제에 그쳤지만 올해는 '효순이 미선이 사망' 15주기인 만큼 예년에 비하면 성대하게 치러졌다.
시민분향소도 주한미국대사관과 불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설치됐다. 그러나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민들의 '부족한' 관심은 여전했다.
평일 낮 시간대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광화문 광장이었지만 불과 몇 달 전 수십 수백 만명이 만든 '촛불 열기'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분향소 한편에 헌화를 위해 수북히 쌓여 있는 국화꽃이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시민들의 발길이 뜸했다.
간혹 부모의 손을 잡고 온 무념무상의 어린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국화꽃을 바치거나 영정 사진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정도였다. 해가 점점 기울고 있지만 짬을 내어 추모하는 직장인들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가던 길을 멈춘 건 호기심으로 분향소를 관찰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보다못한 분향소의 한 관계자가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 4차 산업혁명을 체험하러 온 학생들에게 헌화를 부탁했다. 의정부에서 단체 견학을 온 중학생 20여명은 선생님의 제안으로 기꺼이 헌화에 동참했다.
이날 분향소 한 가운데에는 가로 3.6m, 세로 1.2m, 높이 2.4m의 조형물이 세워졌다. 쇳덩어리만큼 무거울 법한 이 조형물의 이름은 '소녀의 꿈'이다.
5년 전 시민들의 성금으로 효순·미선양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추모비를 만들었지만 정작 추모비를 세울 부지를 구하지 못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아직도 이곳 저곳을 떠돌고 있다.
사고 현장에 추모비를 설치하고 싶었지만 부지를 마련하지 못해 임시로 서울 서대문에 있는 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 마당에 보관하고 있다. 매년 사고발생장소에서 추모제를 지낸 뒤 추모비를 다시 서울로 옮겨올 수 밖에 없었다. 추모비를 트럭에 싣고 다니며 추모행사를 진행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촛불모양을 형상화 한 추모비 조형물 안에는 초등학생 시절의 효순·미선양의 모습과 함께 다음과 같은 추모사가 적혀 있다. '푸르러 서글픈 유월의 언덕 애처로이 쓰러진 미선아, 효순아 손에 든 촛불 횃불로 타오를 때 너희 꿈 바람 실려 피어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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