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됐다고 사드 배치 결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서울=뉴시스】김형섭 장윤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31일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미국 측에 "나는 절차적 정당성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미국이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를 면담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박수현 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사드는 북핵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결정한 것이며 저는 전임 정부의 결정이지만 정권이 교체됐다고 해서 그 결정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다"면서도 "다만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이 강력히 요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절차적 정당성 결여와 관련해서는 "우선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의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지난 정부의 결정에서는 이 두 가지 과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정부는 발표 직전까지 사드 배치를 국민께 알리지 않았고, 배치 결정 직전까지도 '미국으로부터 요청이 없었으며, 협의도 없었고, 따라서 당연히 결정된 바도 없다'는 이른바 '3노(NO)' 입장으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사드가 배치되는 것을 보면서 한국 국민은 과연 사드가 북 미사일에 효용이 있는 것인지, 효용이 있다면 비용분담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사드에 반대하는 중국과의 외교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 정부로부터 충분히 설명 듣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전날 사드 발사대 4기 추가반입 경위 및 보고누락에 대한 국방부 진상조사 지시와 관련한 일각의 우려를 의식한 듯 "어제(30일) 사드와 관련한 나의 지시는 전적으로 국내적 조치이며, 기존 결정을 바꾸려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고 못박았다.
더빈 총무는 "사드가 주한 미군만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과 한국 국민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문 대통령은 "그 말씀에 공감하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주한미군은 한국 방위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한미공조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한국 방위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주한미군의 보호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동의를 표했다.
더빈 총무가 "(사드 배치 관련) 적법 절차를 통해 논의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는가"고 묻자, 문 대통령은 "확실히 예정하기는 어렵지만, 국회 논의는 빠른 시간 내에 진행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국회 논의 이전에 거쳐야 할 것이 환경 영향 평가다. 시간이 소요 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라면 치러야할 비용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에 대해서는 "새 정부 출범이후 분위기가 좋아진 듯하나 중국의 조치들이 해제된 것은 아니다"며 "중국과 외교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중국의 사드 반대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에 사전에 설명하는 절차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중국에 대해 설명하겠지만 미국도 중국에 대한 노력을 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언급했다.
더빈 총무는 "미 의회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김정은의 지속적인 실험과 발표에 우려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북한의 계속되는 UN결의안 위반은 국제평화를 심각히 위협하는 것으로 강력히 규탄하고 있고, 국제공조를 통해 보다 강력한 제재와 압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더빈 총무는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놀라운 일을 했는데 미 상원의원 전원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북한에 대한 기존의 '전략적 인내 전략'에서 '중국에 대한 압박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는 새로운 전략'으로 바꿀 것을 선언한 것"이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나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런 과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북핵의 완전한 폐기다. 이 것을 단숨에 이루기는 쉽지 않으므로 단계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과정은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이루어 낼 수 있는데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수 있도록 제재와 압박을 높여야 하고, 중국과 공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도 나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빈 총무는 "지난 수개월간 중국에 어떤 변화, 즉 북한에 대한 추가적인 압박이 있다고 생각하시는가"고 물었다.
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을 직접 만나봐야 알겠지만 여러 느낌이나 징후들로 볼 때, 중국이 과거보다 더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적어도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면서 "물론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의 단호한 입장과 노력도 작용한 것이지만 그런 점에서 미국과 중국이 공통된 이해와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사드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정확하게 얘기한 것"이라며 "전임 정부의 어떤 결정 과정을 번복하려거나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란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것은 미국에서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민주주의의 비용같은 것이란 설명이 있었다"고 전했다.
ephites@newsis.com
eg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