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는 귀뿐만 아니라 눈을 황홀케 했다. 베네수엘라 출신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는 악보에 갇힌 멜로디와 화성이 아닌, 변주와 확장의 신세계를 보여줬다. 스타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대중과 좀 더 가까운 호흡을 위한 보폭을 부지런히 했다.
2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려 23일 종연하는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김학민)의 '보리스 고두노프'는 웅장한 무대가 우선 객석을 압도했다.
천장에서 위풍당당하게 내려오는 거대한 종 14개, 황금빛 키릴 문자가 새겨진 벽 등은 장엄했다. 이동식 다리, 회전 무대 등 무대 메커니즘과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조명 사용도 탁월했다. 이런 유기적인 조합은 무대∙의상∙조명∙안무를 도맡은 연출 스테파노 포다의 공이 크다.
탄탄한 음악적인 기반은 '보리스 고두노프'의 미장센이 빛을 발휘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다. 지휘자 스타니슬라브 코차놉스키가 이끈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낯설 수 있 있는 러시아 색채의 장엄한 선율을 매끈하게 들려줬다. 성악가들 역시 제 몫을 발휘했는데 특히 그리고리 역의 테너 신상근의 노래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21일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진 몬테로의 첫 내한공연의 2부는 흥미로움의 연속이었다. 리스트 b단조 소나타와 브람스의 '인터메초' Op.117을 연주한 1부도 명연이었지만 2부의 즉흥 퍼레이드가 백미였다.
관객들이 듣고 싶은 곡의 주요 멜로디를 부르면 이내 그 멜로디를 가지고 다양한 전개와 화성을 통해 또 다른 곡으로 탄생시켰다.
이날은 힙합듀오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시작으로 프랑스 출신 작곡가 겸 지휘자인 폴 모리아와 그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버전으로 유명한 '러브 이스 블루(Love is blue)', 생일 축하 노래, 아리랑, 새야 새야 파랑새야 그리고 앙코르로 들려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1악장 주제까지.
몬테로의 즉흥 연주는 기존 곡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탁월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곡이 어떻게 변주될 지에 대한 묘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했다. 몬테로는 2부 중간에는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고국을 위한다며 '베네수엘라를 위하여'를 주제로 한 곡을 들려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날 인상적인 부분은 1000명의 조용한 '떼창'이었다. 아리랑,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신청한 관객이 앞장서 부르고 이 곡의 멜로디를 확실히 몬테로에게 들려주기 위해 청중들이 합창하는 순간, 록 공연장의 우렁찬 떼창과는 다른 종류의 전율이 찾아왔다.
손열음이 22일 오후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친 '손열음의 음.악.편.지'(Musical Letter from Yeol Eum Son)는 기획력이 돋보이는 무대다.
이날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려줬다. 특히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연주하기 전 지휘자 김광현과 함께 이 곡의 영적인 부분에 대해 설명했다. 귀가 멀었다는 작곡가로서는 치명적인 상황에서도 신께 매달리며 작곡을 해나간 베토벤이 그려졌다. 피아노 연주로 먼저 시작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은 손열음이 피아노를 통해 비는 기도에 오케스트라가 응답하듯 조화를 이루며 객석에 가닿았다.
무엇보다 이날 무대는 손열음이 태어나고 자란 원주를 대표하는 원주시립교향악단이 함께 해 의미를 더했다. 클래식을 친근하게 알리고, 지역 오케스트라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니 1석2조다. '손열음의 음.악.편.지'는 다른 형식으로 6월10일·9월9일·12월9일에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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